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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17. 2021

스스로를 해킹하는 피조물

[책을 읽고] 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


뇌는 이야기를 내놓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뇌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믿는다. 착시에 빠질 때, 우연히 빠져든 꿈을 믿을 때, 철자에서 색깔을 경험할 때, 조현병 에피소드 중에 망상을 진실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의 뇌가 실재를 어떻게 서술하든 간에 그 실재를 받아들인다. (중략) 실재란 오직 당신만 볼 수 있고 당신이 꺼버릴 수 없는 텔레비전 쇼와 같다. (97-98쪽)


데이비드 이글먼의 책, <더 브레인>은 뇌과학이 현재 도달한 지점을 흥미진진한 필치로 그려낸다. 실재란 무엇인가?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을 괴롭혀 온 이 질문에, 이글먼은 쿨하게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뇌가 보여주는 것이 실재다. 그림에서 음악을 들었던 칸딘스키에게는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이 실재였다. <구성 8>은 왠지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아니라 정말로 '음악 그림'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바실리 칸딘스키라는 사람에게는 그랬다.



우리 눈에 맹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적 설계'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맹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는 시각 이미지에는 빈 자리가 없다. 뇌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시각 정보는 시상에서 시각피질로 전달된다. 그런데 시상에서 시각피질로의 연결선보다, 시각피질에서 시상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이 10배나 더 많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우리 뇌는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시각 정보의 10배를 보탠다는 말이다. 시상은 뇌가 보낸 장면을 기본으로 하고, 외부 정보와 비교하여 달라진 부분만을 고친다. 이것이 실재의 정체다.


우리 뇌는 시각 정보 처리에 190밀리초, 청각 정보 처리에 160 밀리초를 필요로 하지만, 예컨대 총을 쏘는 장면을 보면 총소리와 총의 섬광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느낀다. 뇌가 그렇게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편도체가 비상 소집한 뇌 능력이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우리가 느끼기 때문이다.


***


우리 뇌의 많은 부분이 사회적 활동에 필요한 기능에 할당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이므로, 진화 과정에서 많은 리소스가 할당된 것이다. 사회적 아픔, 예컨대 따돌림으로 인한 고통으로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신체적 고통이 있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같다. 그만큼 뇌는 사회적 되먹임을 중요한 자극으로 인식한다.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가 닮아가는 현상은 거울 뉴런으로 설명 가능하다. 서로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서 따라하다 보니, 비슷한 부위에 비슷한 형태의 주름이 생기는 것이다. 보톡스를 맞아 주름을 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데 둔해진다. 상대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따라한다. 이것이 거울 효과다. 그런데 보톡스로 표정을 잘 짓지 못하게 되면 이것이 쉽지 않다. 그 결과 상대의 표정을 읽는 것조차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


뇌는 인공 와우나 인공 망막으로 들어오는 신호도 해석하는 방법을 터득해낸다. 즉, 뇌는 어떻게 얻었는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고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런 뇌의 특성을 이용해서,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뇌에 직접 입력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저자는 대담하게 질문한다. 스티븐 호킹의 사례로 잘 알려진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확장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생각을 확장한 것이 뇌에 대한 컴퓨터 가설(Computational hypothesis of the brain)이다. 뇌의 핵심 요소는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이 참이라면, 컴퓨터로 인간의 뇌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 생각을 더 확장해보자. 의식이라는 것이 반드시 개체 안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소프트웨어를 이루는 것은 하나의 개체에 국한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예컨대 개미 하나하나는 단순한 작업을 하는 하등동물이지만, 개미 군집은 마치 지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개미 군집뿐만이 아니다. 도시라는 연결망도 하나의 의식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유명한 가이아 이론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의식이라는 것은 개체 수준으로 환원되지 않는 창발적 속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뉴런이나 개미는 의식을 가지지 않지만, 그들의 네트워크는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뉴런 간의 연결망에서 창발한 것이라면, 정보 연결망으로서 그것을 컴퓨터 하드웨어 안에서 재구성하지못할 이유가 없다. 이런저런 사소한 기술적 장애물만 극복하면 된다. 그래서 데이비드 이글먼은 과감하게 주장한다. 지금은 역사적 순간이며, 그 이유는 인간이 드디어 자신의 하드웨어를 해킹하기 직전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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