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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철학 게임

[책을 읽고] 강신주, <철학 vs 철학> - 후기

by 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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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 지식 50>을 재미있게 읽고, 리디셀렉트에서 철학이라는 단어로 검색했을 때 화면에 뜬 수많은 책들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압도적인 평점(4.8)을 보고 골랐는데, 분량(종이책 1,492쪽, 전자책 2551쪽)을 보고 놀랐다. 잠시 망설인 것도 사실이지만, 철학이잖아! 당연히 ㄱㄱ를 외치고 뛰어들었다. 2020년 12월 말의 일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철학책을 쓰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깊이도 충분하다. 대학원을 철학과로 갈까 고민했었고, (문학)석사 논문을 하이데거로 쓴 내게도 배울 것이 넘쳐난다. 내가 철학과를 갔더라면, 아마 이런 책을 쓰고 싶지 않았을까.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놀라운 종합력에 있다. 이토록 다양한 철학자를 다루면서 체계적으로 논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독특한 시각과 재치 있는 해석도 빛난다.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이나, 에버렛의 다중 세계 해석을 대안 세계나 꿈과 연관 짓는 부분에서 통찰과 재치가 빛난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일단 지나친 도식화와 단순화가 있겠지만, 그것은 이 책의 종합적인 체계에서 나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나는 이것을 단점으로 꼽지 않겠다. 그러나 다른 단점도 있는데, 들뢰즈와 장자에 관한 지나친 편애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장자를 주제로 논문을 썼으므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잘못된 지식을 주장하는 것인데, 예컨대 강신주는 도킨스나 진화론을 대단히 크게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도킨스가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한다며 배격하는데, 도킨스의 책을 단 한 권만 읽었다면 도킨스가 가장 비판하는 것들 중 하나가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어디에 가서 철학 논쟁에서 꿀릴 일은 없을 듯하다. 아니, 아예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이 책에 나오는 철학 사상들은 자기 자리를 잡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는 물론 양날의 검이다. 도식적인 체계는 이해하고 외우기 쉬우나, 세세한 부분을 무시한 것이기에 잘못에 빠질 위험 역시 제공한다.


앞선 글에서 이미 지적했지만, 나는 강신주의 노자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장자와 대립각을 만들기 위해 노자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곡해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 책에서 노자와 비슷한 취급을 당한 철학자로는 바르트와 하이데거가 있다. 춘추전국 시대의 철학자, 고자는 그 반대로 극찬의 대상이다. 노자와 고자는 둘 다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는 철학자들인데, 남아 있는 약간의 기록을 가지고 한 사람은 매도를, 다른 한 사람은 절찬을 당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단점은 이 대단한 책에 별 상처를 내지 못한다. 누군가가 내게 철학책을 딱 한 권만 읽겠다고 하면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철학은 궁극의 게임이다. 몇 주에 걸친 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점만 고려해도, 이 책의 가치는 대단히 높다. 책 두께를 보고 한 달은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2주 만에 끝내고 말았다. 도대체 손에서 놓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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