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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필승총 210606

요즘 읽은 책들

by 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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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리스, <온 더 퓨처>


한 천문학자가 전하는 미래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그는 과학기술 낙관론자다. 현재 인류가 직면하는 문제들 대부분을 과학기술이 해결할 것이며, 그러므로 과학기술에 우리가 긍정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다만,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원자력 개발이나 GMO를 옹호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유성 충돌과 같이 분명한 미래의 재앙을 예측한다면 그것이 100년 뒤의 것이라도 대비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논리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논리로는 태평양 쓰레기섬을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Kurzgesagt에서나 봤던 기묘체(strangelet)나 상전이에 의한 우주 종말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었다. 과학의 빈틈을 신의 존재로만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부분, 특히 마이클슨-몰리 실험이 17세기에 이뤄졌다면 그들이 이것을 지구중심설의 증거라 주장했을 거라 말하는 부분도 좋았다.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책. 다양한 과학 분야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파킨슨병 환자와 뚜렛 증후군 환자에게서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

- 해파리나 인간이나 신경 체계는 질적으로 같다. 양적으로 다를 뿐이다.

- 식물의 학습결과는 유전체에 기록된다. 그래서 식물의 유전체는 종종 인간보다도 크다.



박선웅, <정체성의 심리학>


정체성은 이야기를 통해서 확립된다. <이야기의 탄생>의 저자 윌 스토에 의하면, 소설의 모든 내용은 결국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경험을 글로 써보자.

- 자신이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 시기는 자신의 삶이 더 좋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라 여기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말로 이어질지 생각해보자. (191)



닉 폴슨, <수학의 쓸모>


AI 알고리즘이 결국 회귀방정식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거나, 만성질환이 만연해야 돈을 버는 의료계가 AI를 외면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AI의 민주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부분은 꽤 괜찮다. 조폐국 시절 뉴턴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문제는 저자의 내로남불식의 태도다. 다른 교양 수학책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자신의 책만 훌륭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과연 그렇군."이라고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자.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모두 근사치다. (393) - 좋은 베이지언으로써, 우리는 모두 사전확률을 조금씩 개선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씨에지에양,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전형적인 '암기식 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책.

- 살균에 적합한 알코올 농도는 70~75%다. 농도가 더 높으면 세균을 탈수시키기 전에 세균막 단백질이 응고되는 바람에 살균효과가 제한된다.



Pearson's Anthology for English Poetry (GCSE)


영국 고등학교 과정 영시 교과서. GCSE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해당 시인의 업적으로 인정될 정도의 권위를 자랑하는 만큼, 꽤나 엄선된 시들이 등장한다. 테니슨이나 워즈워드와 같이 (내가 생각하기에) 과대평가된 시인들은 원체 유명하니 그렇다고 치고, 현대시 선정은 좀 의아한 것들이 많다. (정치적 올바름에 의한 편향이 좀 있다.) 물론, 좋은 시들도 많이 만났다. 블레이크, 브라우닝, 하디의 시들이 훌륭한 것은 내가 굳이 거들지 않아도 될 일이다. 윌프레드 오언의 명시 Exposure 외에도, Love's Dog (Jen Hadfield), War Photographer (Carole Satyamurti), Belfast Confetti (Ciaran Carson), Adlestrop (Edward Thomas) 등 좋은 시들을 많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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