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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26. 2017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서평] 인나미 아쓰시의 <1만권 독서법>


우선 저자에 관한 이야기. 책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자전거 사고로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이후, 책을 느리게 읽게 된 것이 뇌를 다쳐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고민하던 학생. 그가 음악 칼럼니스트를 거쳐 서평 작가가 되면서 한 달에 60권의 책을 리뷰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한 달에 60, 1년에 700권. 10년이면 7천권이니 1만권도 멀지 않았다.

책 내용에 관한 이야기. 특별할 것이 없는 독서법에 관한 책.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 적은 것은 마음에 든다. 곧바로 요점으로 들어가서, 한 달에 60권을 읽는 비법은 필요없는 부분을 대강 건너 뛰며 읽는 것이다. 사실 이 책과 같은 일본발 실용서는 분량도 적고, 내용도 단순해서 그냥 통독으로 읽어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있는 능력만 있다면 두 시간이면 다 읽는다. 건너뛰며 읽기는 바로 이런 책에나 쓸 수 있는 방법이니, 실용성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하지만 책에 줄을 쳐봤자 소용없다는 주장이나, 책을 읽고 한 줄로라도 느낌을 적어두자는 제안에는 대찬성이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 1만권이라니, 정말 도발적인 제목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1년에 700권씩, 10년 이상을 투자해서 그만큼 읽겠다는 것이다. 한 시간에 한 권씩 읽어서 3년에 1만권 읽겠다는 어떤 사람보다는 상식적이다. 더구나 저자도 아직 1만권을 읽은 것이 아니고, 1만권을 읽게 되었을 때 얼마나 다른 세상이 펼쳐질까, 라고 말하는 장면은 귀엽기까지 하다.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고, 같이 해 보자는 태도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태도 아닌가. 첨언하자면, 원제목은 "느리게 읽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술"이고, 전혀 도발적이지 않고 상식적이며 책 내용과 상응하는 제목이다.

ⓒ Pixabay

실제 적용에 관한 이야기. 책에 부록으로, 저자가 직접 쓴 서평이 몇 개 나온다. 대개 나도 읽은 책들이라서, 서평에 대해 느낀 점을 써 본다. 가장 느껴지는 점은, 저자가 정말로 건너뛰기를 하면서 책을 읽은 것 같고, 그 사실이 서평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서평이다. 특히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에 관한 서평은 논점이 완전히 틀렸다. 같은 책을 보고도 느낌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책의 가장 중요한 논점인 "어떻게 그릿을 기를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 저자가 쓴 서평은 <그릿>의 초반 1/3, 더 심하게는 제4장 한 챕터만 읽고도 쓸 수 있는 서평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서평은 책 앞부분에 나오는 사진과 목차만 훑어보고 쓴 서평으로밖에는 안 보인다.

저자의 서평 방법의 핵심인 "신이 깃든 한 문장"도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릿> 서평에는 신이 깃든 한 문장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인용된 구절이 몇 개 있는데, 책의 전체적인 논점에서 볼 때 중요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부분이다. 정말로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편의점 인간>의 한 문장은 누구라도 쉽게 고를 수 있는 책의 결론 부분의 문장이다. 그게 소설의 핵심 문장인 것은 맞지만, 소설에서 굳이 한 문장을 꼽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저자도 소설은 빠르게 읽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한 문장은 그나마 잘 뽑은 편이지만, 미니멀리즘을 전도하는 사사키 후미오가 자기 책의 핵심 문장이라고 생각할 문장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차피 독서는 간주관적 행위이고, 간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생각하면, 텍스트에서 뭐가 중요한지에 관해서 저자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독자인 서평가가 "나는 이 문장이 와 닿았다. 내게는 이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이다"라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서평을 읽는 사람들은 왜 읽는 것일까? 서평가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맛보려고 서평을 읽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서평이 책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과연 서평일까? 한 달에 60권이라니, <편의점 인간>은 가능하지만 <그릿>은 가능하지 않은 분량이다.


<1만권 독서법>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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