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책들
칼로린 엠케, <혐오사회>
집단적 혐오에 관한 진지한 성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공감이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화자가 특정 집단을 절대악이라고 규정하며 설명하는 챕터는 왜 넣었을까? 혐오 현상에 대한 고발 르포로는 훌륭하지만 분석은 허약하다.
제임스 영, <아이디어 생산법>
1939년에 나온 소책자. 짧지만 아이디어 생성에 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당시에는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디폴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비범함이 돋보인다.
- 광고에서 아이디어란 제품과 사람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삶과 사건에 관한 '일반적 지식'을 새롭게 조합한 결과다. 일반적, 구체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조합해보며 새로운 연결점을 발견하려 애쓰라. (두 단계 모두에서 메모가 중요하다.) 충분히 노력을 기울였다면, 쉬면 된다. (사건조사를 마치고 음악회에 가던 셜록 홈즈처럼.) 잠재 의식이 유레카를 던져줄 것이다.
- 예컨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19세기 영국 지주계급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비웃었는지, 그리고 20세기 뉴요커가 왜 똑같은 짓을 하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부유층'의 '속물근성'에 호소하는 아주 효과적인 광고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 단어를 수집하라.
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진부한 도입부, 그러나 탁월한 결말. 아쉽게도 결말은 결론이 아니다. 토마 피케티의 탁월한 책이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듯이, 이 책 역시 세상에는 물보라 하나 만들지 못하겠지.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천민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 고발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저자의 고통이 너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Thích Nhất Hạnh, <Moments of Mindfulness>
명상에 관한 짤막한 글들 모음. 틱낫한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와닿지 않는다.
- 인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증표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를 더욱 인내하게 된다.
- 명상은 탈출이 아니다. 마음챙김과 집중력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명상이다.
히라마쓰 루이, <3분만 바라보면 눈이 좋아진다>
제발 눈이 좋아지길!
만프레드 슈피처,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딱 블로그 수준의 책. 문제는 이런 책이 번역되어 한국까지 왔다는 점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는 조금 봐줄 만한 내용이 나온다. 예컨대 시간이 지날수록 평균 IQ가 상승하는 '플린 효과'는 최근 방향을 바꾸었다. 즉 요즘 사람들은 갈수록 IQ가 떨어진다는 얘기인데, 이것이 스마트폰으로 인한 효과 아닐까 하는 (책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근거는 없지만) 재미있는 주장이 책 끄트머리에 나온다. 이미 많은 책에서 다룬 주제지만, 추천 알고리즘이 점점 극단적인 편향을 지닌 아이템을 추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그리고 IT 거대기업들이 '공짜' 데이터를 가지고 가짜뉴스에 이어 정치판까지 기웃거린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 역시 괜찮다.
김경민 등, <어느날 문득 경제 공부를 해야겠다면>
시시껄렁한 경제 이야기. 3번째 꼭지(고용유연화)가 마음에 들어 전부 읽었는데, 그게 다였다.
- 고용과 해고가 유연하지 못한 경우, 기업들은 무형자산(대표적인 것이 인적 자산)에 덜 투자하고 유형자산(예컨대 자동화 기기) 에 투자한다. 따라서 경직적인 노동 유연성은 취지와 반대로 작동할 수 있다.
- 필립스 곡선의 유효성에 관한 논란 중에는, 최근 미국의 저물가-저실업이 인구 고령화에 기인한다는 연구도 있다.
리처드 칼슨,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
잔잔하고 좋은 조언들이 담긴 책이다. 책 제목 대로,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다. 지금 이 일이 과연 1년 뒤에도 중요할지 자문해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자. 나의 장례식을 생각해보자. 원하는 것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가를 바라지 말고 선행을 하자. (마음의 평온이 진정한 대가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중요한 게 뭐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해도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지금 이 대화를 통해서 진정 얻으려는 것이 뭔지 생각해보자.
-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았을 때,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다는 사실을 알려 줘서 너무 고마와요. 이제야 알았네요. 당신 정말 대단하군요!" 이렇게 반응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아니면 반대로 당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했을 때, 그 사람이 당신에게 감사해하거나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 적이 있었나요?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55쪽)
황영애,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
재미있다. 그런데 화학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의 매칭이 좀 많이 억지스러운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 헬륨을 잠수부들의 고압산소통에 주입하여 잠수병을 예방한다. 헬륨은 혈액에 녹지 않아 감압시에 기포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 플라즈마는 도체다. 그런데 전자만 움직이는 다른 도체와는 달리 전자와 양이온이 모두 움직인다.
- 헤스의 법칙(어떤 경로로 최종 결과에 이르게 되는가에 상관없이, 들고 나간 총 에너지는 같다는 법칙)을 통해 기존에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반응을 유도할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KNe, RbNE, CsNe 같은 걸 다 만들 수 있게 되었다.
- 질산암모늄이 물에 용해되는 과정은 흡열과정이면서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데, 1몰의 질산암모늄이 이온 2몰이 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 비소 이온과 강하게 킬레이트 결합을 이루는 물질로 비소의 독을 중화하는 해독제를 만들었다. 금속이온에 다배위자가 배위하면 단순배위자가 배위하였을 때보다 안정도가 증가 (몰수 증가, 엔트로피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킬레이트 효과라 한다. 킬레이트 효과는 몸속에 쌓인 다른 중금속을 배출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