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이송주, <장 건강하면 심플하게 산다>
우리 자아의 일부, 장내세균총
장내세균총의 존재가 확인되고 나서 장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늘었다. 현대인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거의 누구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장 건강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문제는 장 건강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먹는 즐거움이라는 데 있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새는 장 증후군(leaky gut syndrome)'이 아토피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이제는 학계의 주류설이다. 물론 장이 새는 것은 단지 아토피안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알다시피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소화계는 엄밀히 말해 우리 몸의 밖이다. (2차원 세계에 사는 <플랫랜드> 사람들은 절대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장이 샌다는 것은 바로 그 안팎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말이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건강 검진
저자는 건강검진 결과지에 나오는 '정상B'라는 문구를 경고한다. 예컨대 공복혈당이 100에서 125 사이인 경우 정상B라는 판정을 받는다. 우리는 안다. 공복혈당은 당연히 100 이하여야 한다. 정상B는 절대 정상이 아니다. 경고 신호다. 2016년 일반건강검진 결과 정상A를 받은 사람은 전체의 7.4%에 불과했으며 무려 34.6%가 정상B였다고 한다.
장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는 제일 좋은 방법은 대장 내시경이지만 그건 괴롭기로 악명 높다. 분변 검사도 정확도가 높지만 왠지 꺼려진다. 훨씬 간단한 것으로 유기산 검사가 있다. 소변으로 배출되는 대사산물을 측정해 대사의 어느 단계에 문제가 있는지 추측하는 방법이다.
장이 새는 경우 나타나는 증상은 일반적인 장의 불편감에 더하여 만성피로나 식은땀도 포함한다. 감기와 염증질환에도 취약하다. 장이 새는지를 측정하는 검사로는 '장 투과성 측정' 검사가 있다. 소변에서 만니톨과 같이 크기가 작은 입자가 많이 검출된다면 건강하다. 그러나 락툴로스처럼 크기가 큰 입자가 검출된다면 장이 샌다고 봐야 한다. 이 검사는 비용도 저렴한 편이고 동네 의원에서도 가능하다고 하니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루텐이라는 팜므 파탈
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수많은 물질 중 으뜸은 역시 글루텐이다. 데이비드 펄머터의 <그레인 브레인>부터 포브스 야요이의 <빵을 끊어라>까지 수많은 책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 적어도 글루텐은 끊으라는 것이다. 탄수화물도 밀가루도 끊을 수 없다면 적어도 글루텐이라도 끊어라.
출장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하필 <그레인 브레인>을 읽고 있었기에 기내식을 안 먹었던 추억(?)이 있는 나다. 케토시스 한번 경험해 보겠다고 하루 탄수화물을 10g 이내로 제한하다가 난생 처음 변비라는 것을 경험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워낙 빵돌이라서, 과연 글루텐을 하루라도 끊을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딱 2주일만 끊어보라고. 3일만 끊어도 차이를 느낄 것이라고. 그런데 나는 이미 해봤다. 글루텐이 아니라 탄수화물을 끊기를 두 달 가까이 했었다. 물론 치팅 데이가 있었지만, 탄수화물을 3일 끊는 것은 아주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단 한번도 뭔가 차이를 느꼈던 적이 없다.
유산균과 식이섬유
나는 지금까지도 프리바이오틱스를 복용해본 적이 없다. 올리고당을 먹으라는 얘기 자체가 미덥지가 않아서 그랬다. 그런데 100억 도달 보장이라는 유산균을 먹으면서 녀석들의 먹이는 주지 않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다. 어찌 보면 10억을 도달시키고 먹이를 줘서 뻥튀기하는 게 효율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게다가 돈도 덜 든다.) 그래서 이 책을 보던 중 프리바이오틱스 중 맨앞에 소개된 치커리 뿌리 차를 구입했다. 커피맛이 난다니, 내가 찾아헤매던 것 아닌가.
독일 소아 위장영양학 국제저널에 따르면 실제로 90명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프리바이오틱스를 섭취시켰더니 섭취 전보다 유익균이 10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79쪽)
어떤 유산균이 내 몸에 맞는지는 2~3주 복용해 보면 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나는 참 다양한 종류의 유산균을 먹어봤지만 2~3는커녕 1년을 먹어봐도 몸에 맞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유산균 제품의 구매 평을 봐도 그렇다. 먹어도 별 효과는 못 느끼겠지만, 적어도 해롭지는 않은 것 같으니 먹는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효과가 없어도 먹겠다고 하기에, 유산균은 너무 비싸다.
웃기기까지 하는 책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의사가 썼는데도 오류가 많다. 가끔은 웃기기도 한다.
물을 끓이면 나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죽지만 몸에 좋은 미네랄까지 같이 죽는다는 문제가 있어 정수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93쪽)
꽤 제대로 웃겨준다. 생명의 정의가 다양하게 제기되고는 있지만, 미네랄도 생명이라는 주장은 처음 접한다. 미네랄이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 예컨대 물에 포함된 칼슘이나 산화철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치커리 차는 커피 맛이 나지만 카페인 함량이 커피보다 훨씬 낫다. (282쪽)
'낫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더 좋다'라는 뜻인데, 카페인 함량이 더 좋다는 건 무슨 뜻일까? 맞춤법 검사에는 돈도 들지 않는데, 독자들을 웃기려고 이런 세세한 데까지 신경 쓴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