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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주택시장 삼국지

[책을 읽고] 김수현,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

by 히말

전 세계가 내집 마련이라는 사냥에 나서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자가 소유에의 열망은 언제나 있어 왔다. 이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단지 동아시아적 현상이라 생각하던 미국과 유럽은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가 소유의 열풍을 겪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 와중에 복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국민들은 각자도생 차원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주택 소유가 바로 그 '살 길'이었다. 정부가 내팽개친 복지를 사람들은 집 한 채 마련하는 데에서 찾았다.


그런데 소위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최고의 복지 수준을 누리는 북유럽 국가들에서조차 집값이 고공비행을 한다. 십여 년 전 노르웨이에서 일할 때, 노르웨이인 동료는 내게 말했다.


"몇 년 전에 집을 샀는데, 값이 많이 올라서 나는 가끔씩만 일을 해. 지금 일을 하기 전에 몇 년 동안 쉬었었지."


주택도 시장에서는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이 평범한 사실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만나 전 세계에 자가 소유의 열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정부가 복지 지출을 줄이자, 소위 선진국 국민들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가 소유는 각자도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주거 문제를 해결해 준다.


- 2000년대 들어, 서구 역시 주택이 국가 복지 후퇴에 대응하는 복지자원이 되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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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과잉의 일본


집값의 고공 비행, 주택 시장의 양극화, 그리고 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이슈. 단지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독재국가 싱가포르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탄생하는데 부동산 정책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사례도 있다. 주택난에 항의하는 시위는 동아시아 모든 국가에서 한 번 이상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을 우리의 미래로 보는 시각은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언제나 강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우선 일본을 살펴보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들 중 갖고 싶은 것으로 부동산을 꼽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일본의 빈집 문제를 다루는 뉴스는 방송사들의 단골 메뉴다. 일본 주택 시장의 최대 화두는 바로 공가 문제다.


- 일본은 1966년에 주택수가 이미 가구수를 추월했다. (192)


- 일본 공가의 50.9%는 임차인을 못 구한 임대용 주택이고, 나머지는 미분양, 별장, 상속 방치 등이다. 대도시에 특히 임대용 주택 공가가 많은데, 도쿄의 경우 공가의 71.5%가 이 유형이다. (207)


- 일본은 신축 선호가 심해서, 전체 주택 거래에서 중고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14.7%에 불과하다. 이 비중은 미국, 영국에서 80%가 넘고 프랑스도 68.4%다. 또한 신규주택 착공 중 재건축 비중도 10% 이하이고, 2017년에는 7.4%를 기록하고 있다. 집 지을 땅이 남아도는 것이다. (209)


- 일본에서는 지금도 연간 100만 호 정도의 신규 주택이 공급되는데, 이중 40만 호가 민간임대주택이다. 서브리스를 사업모델로 하는 전문임대관리업자들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210)


- 일본의 목조주택, 우리의 대단지 재개발 방식 등을 감안하면, 우리가 일본식의 공가 문제에 처할 가능성은 낮다. (저자는 불가능하다고 표현)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의 주택 여건이나 공가 문제는 일본의 1980년대와 유사한 수준이다. (220)


우리의 주택 시장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인구 정점은 18년, 고령화 사회 진입은 30년 격차를 두고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주택 관련 통계는 그 격차가 40년이나 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주택 시장이 일본의 1980년대 수준이라 말한다. 저자의 이력을 생각할 때, 꽤 의외의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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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시장에 맡긴 결과


싱가포르를 보자. 이 나라는 90% 이상의 땅이 국유지다. 이를 기반으로 90% 이상의 주택 보유율을 자랑하는 등 별다른 주택 문제는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최근 외국인 밀집거주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사례에서 보듯, 극심한 거주 격차가 존재한다. 더구나 겨우 부산 정도의 크기에 외국인 입국을 철저히 통제하는 싱가포르를 우리나라 주택 정책의 벤치마크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만의 자가 거주율은 2018년에 89.2%나 된다. 대단히 인상적인 수치지만, 저자는 대만을 한마디로 '불평하면서도 적응한 자가 소유 사회'라 칭한다.


- 대만의 주택소유자 중 1주택은 71%, 2주택은 19%, 3주택 이상이 10%다. 임대 수익률은 전 세계 최하 수준인 연 1.5%라서, 다주택자들은 자본소득을 노린다. 타이페이 시는 다주택자의 빈집을 임대로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164-165)


- 대만 공가 발생의 또다른 원인은 저조한 도시 재개발 사업이다. (165)


대만 주택 시장에서 임대 수익률은 전 세계 최하 수준이지만, 절대액 기준으로 임대료는 절대 싸지 않다.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이 자본 소득을 노리고 주택 수를 늘리는 배경에는 낮은 보유세도 한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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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성장의 중국


저자는 현 상황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사례를 가장 높게 평가하지만, 향후에는 중국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전망을 한다. 중국은 현재 주택보유율이 무려 96%다. 싱가포르에 뒤지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 문제가 되는 외국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문제는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소위 '판자집' 내지 '쪽방' 문제도 없다. 게다가 중국은 대단히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주택 상황을 여타 동아시아 국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중국에 대한 저자의 호평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규모는 유사하나, 주택 재고의 시장가치는 중국이 미국의 2배 이상, 유럽의 3배 이상이다. 이는 버블 붕괴 당시 일본과 유사하다. (241)


- 2007년, 중국은 물권법을 개정, 주택용지의 사용권이 자동 연장되도록 했다. (260)


- 2019년 중국의 1인당 주거면적은 39.8m2다. (266) - 한국 30, 홍콩 15.


- 소형 주택 일정 비율 의무화가 시행되었으나, 중국에서 소형 주택은 인기가 없다.


- 중국에서 한 해동안 아파트 거래로 교환되는 화폐 흐름은 중국 GDP의 14%에 달한다. (270)


- 2020년, 중국 가계 대출의 56%는 주택담보대출이며, GDP 대비 38%에 달한다. EU 46%, 미국 53%에 비해 낮지만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다. (287)


- 중국 주택 시장은 정부 정책 결과 안정화 추세에 들어섰지만, 미분양이 여전히 많고 공가도 많다. 1선 도시의 공가율은 17~18%인데, OECD 평균 10%에 비해 매우 높다. 공가의 84%는 다주택자 소유인데, 도시 가구의 다주택 보유율은 2019년 41.5%에 이른다. (294)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데이터다. 다만, 아파트 거래로 발생하는 현금흐름이 GDP의 14%에 달하는 것이 중국의 문제라고 지적을 하는 대목이라면, 다른 나라는 어떤지 비교해주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닐까? 아쉬운 부분이다.


주택 관련 해외토픽 소재가 홍콩은 큐비클, 일본은 빈집이라면 중국의 경우에 그것은 '빈 도시'다. 통째로 비어 있는 아파트 단지가 곳곳에 존재한다. 중국의 주택 시장은 지자체, 즉 지방 정부를 중심으로 시장화가 진행되었는데, 일부 지자체가 무리수를 쓴 결과다. 착공과 준공 통계가 큰 격차를 보이는 것도 중국 주택 시장의 특징인데, 그 차이는 지가 상승을 노리고 준공을 지연하는 건설사들이 만드는 문제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와 건설업계의 유착이 '꽌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중국은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독재국가다. 강력한 독재의 힘으로 부동산 시장의 문제에 대처해 왔고,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이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한 것들을 학습했다. 주로 대출 규제로 이루어진 최근 중국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저자는 주택 문제를 대하는 중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다름 아닌 독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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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전 세계에 걸쳐 주택의 금융화가 진행 중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역사의 증거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다. 그래서인지 주택의 금융화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를 맞아 엄청난 규모의 돈이 풀렸고, 전 세계 주택 시장은 미증유의 폭등을 경험했다. 다시 말해, 시장에 맡겨두면 주택이라는 상품은 앞으로도 각국의 경제를 들었다놨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이 책의 부제는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2>다. 책의 1/3을 차지하는 중국 파트를 읽고 나면, 저자는 나름대로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도 해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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