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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열기 vs 냉철한 판단

[책을 읽고] 사브리나 코헨-해턴, <소방관의 선택>

by 히말

온갖 소음과 빛과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사람들의 생사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압박감으로 '모든 것이 뜨겁게 달아오른 그 순간'에는 사후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명확성을 가지고 사고하기가 쉽지 않다.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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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그 순간의 열기>. 정보 충돌과 상황의 압박감에 억눌리며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숙명이다.


이 책은 한 소방관이 자신의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녀는 이것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고위의 여성 소방관이며, 일 하면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게다가 그녀는 청소년 시절 2년이나 노숙자 생활을 했으며, 유대인 혐오자를 피해 도망다니기까지 해야 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한데, 그녀의 비범함에는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


책에는 소방관이 해결해야 하는 아주 다양한 상황이 전개된다. 긴장감에 땀을 쥐게 되는 그 상황들의 대부분이 훈련 상황이라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극한 상황을 간접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기대에 어긋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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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은 결국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후회를 덜 할 결정을 할 것인가. 심리적, 신체적 압박감에 몰리고, 제한된 정보에 기반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소방관도 인간일 뿐이다. 정보가 모여드는 지휘관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정보가 충분한 것도 아니며, 대개의 경우 정보들은 서로 상충한다. 거기에 더해 서로 충돌하는 사람들을 조화롭게 이끌어야 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원칙들은 일상 생활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우리들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정보와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극한 상황에 몰려 스트레스의 압박에 몰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방관도 우리도 인간일 뿐이니까.


-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에 어떤 상황을 예측하면서 그 결정을 내리는지 의식적으로 검토해보라. (160)


- '결정 제어 프로세스'를 사용해도 의사 결정의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261)


- 결정 제어 프로세스 (간략화 버전) - 1) 우리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2)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는가? 3) 거둘 수 있는 이득은 감수해야 할 위험을 정당화하는가? 4) 정보, 가정, 예상, 의사소통 여부에 대해 공통의 이해가 형성되어 있는가? 5) 집단의 결정이 내 개인적 판단과 부합하는가? (271)


- 소수 인종 출신의 구급대원들은 PTSD 등 장애를 더욱 숨기는 경향이 있다. '다르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292)


- 매일 밤, 가족이 모두 모여 우리가 감사하고 싶은 세 가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를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297)


저자에게 가장 큰 충격을 남긴 사건은 한 신혼부부가 당한 교통사고였다. 졸음 운전 트럭이 신혼 여행 중이던 그들을 덥친 것이다. 신랑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 모습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던 저자는, 살아남은 신부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교통사고 부상으로 인해 신부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자는 오히려 안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충격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더 가혹했으리라.


그후, 저자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요즘 일에 치여 살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 도합 2시간이 넘으며,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3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운동하고 밥 먹고 나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그 귀중한 시간을 나는 대개 컴퓨터 앞에서 소모한다.


오늘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감사할 일과 행복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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