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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26. 2022

암흑 물질은 플로지스톤?

[책을 읽고] 이언 스튜어트, <우주를 계산하다> (1)

1.


달이 없다면, 지구의 자전축은 불안정하게 0도와 85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별로 유쾌하지 않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에 생명 현상도 없었을까? 여기에서 그렇다고 답한다면, 흔해 빠진 책이다. 이언 스튜어트는 다르게 말한다. 바다 속 생물들은 별 영향 받지 않을 것이고, 육상 생물들도 진화를 통해 적응할 것이라고.


류츠신의 과학소설, <삼체>에는 센타우리 항성계의 문명이 등장한다. 아시다시피,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인 센타우리는 2중도 아니고 3중 항성계다. 알파, 베타, 그리고 프록시마.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알파 센타우리가 2중 항성계라는 사실을 듣자 마자 이렇게 생각했다. 


"거긴 가 볼 필요 없겠군."


류츠신과 같은 창의력 대장은 다르게 생각했다. 불지옥과 얼음지옥이 번갈아 나타나는 그곳에도 문명이 있을 것이라고. 그 문명은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이전 시기의 지식을 어떻게든 다음 시기에 전승하려고 애쓰는 곳이다. 그리고 그 복잡한 항성계에서도, 천문학자들은 결국 우주의 비밀을 알아낸다.


나는 이 책을 2019년에 리딩리스트에 넣었다. 그러나 나는 책 두께에 압도되어 읽기를 미뤘다. 그러다보니 2021년이 되어서 읽기 시작했다. 2,500쪽 짜리 강신주의 책을 읽다 보니, 700쪽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 느끼게 된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보니, 강신주에게 미안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2021년 올해의 책 최강 후보는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이었다. 그 자리는 지금 이 책이 차지하고 있다.


2021년 올해의 책 자리를 차지한 <우주를 계산하다> 역시 여러 개의 글로 나누어 리뷰하려고 한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위대한 책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이걸 결국 다 읽다니...


2.


이 책은 우주물리학 관련해서 최근 2년 동안 읽은 책들 중 단연 최고다. 도입부가 재미없어 스킵할 뻔했던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역시 책은 끝까지 읽고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앞으로도 유지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강점은 단 한마디로 요약된다. 다르게 생각하기!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물리학자들이 왜 기존의 틀에 매몰되어 있는 걸까? 얼마든지 다른 길이 보이는데 왜 가던 길만을 고집하는 걸까?


외계 생명체가 꼭 탄소 기반이어야 하나? 그들이 소통에 꼭 '전파'를 써야 하나? 우리가 그들의 소통을 정말 알아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것이 제13장, '외계 세계들'에서 다루는 주제다.


제14장 '어두운 별들'에서는 블랙홀에 관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제16장에서는 빅뱅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제18장에서는 암흑 물질이 플로지스톤이나 에테르와 같은 것일 수도 있음을 말한다. 제19장에서는 다중우주와 인류 원리에 관해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필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언 스튜어트뿐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조차도 언제나 드레이크 방정식, 골디락스 영역, 탄소 기반 생명체 가정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세상에는 빅뱅까지도 의심하는 용감한 과학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람다CDM이 정답이라 확신하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수 있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과학자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지금까지 인류의 과학 발전은 과감한 상상력의 도약으로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들로 점철되어 왔다. 대통일이론이 목전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람다CDM과 초끈이론(M-이론)이 정답임을 의심하지 않고 어떻게든 빗나가는 관측 결과를 누더기식으로 땜빵하여 유지하려는 학자들의 아집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디에서 오긴, 매몰비용 오류에서 오지.)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


소수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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