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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실존적 불안은 인간의 숙명

어떻게 실존적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까

by 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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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den Nowlan의 시 'He Sits Down on the Floor of a School for the Retarded'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Yet, it’s what we all want, in the end,

not to be worshiped, not to be admired,

not to be famous, not to be feared,

not even to be loved, but simply to be held.


사랑받는 것조차 아니고 단지 '안겨지고 싶어서'라는 것은 시인의 과장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이어지는 이 시의 마지막 연을 생각하면, 이 구절의 감동은 오히려 덜해진다. 딱 이 구절만 생각하자. 제목에서 드러나는 맥락 자체도 잊자. 결국 인간이 갈구하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더 보이즈>를 대단히 좋아한다. 아마존 프라임도 없고, 매화마다 사람이 분해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유튜브 요약판으로 보고 있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은 메인 빌런인 홈랜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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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 초반부에서, 홈랜더는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스타라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사랑받는 게 더 좋아. 하지만 만약 그게 안 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홈랜더를 대적할 자는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그는 최강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우트 사와 미국 정부 인사들에게 힘으로 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놀랍게도 여론이다. 그는 정치인처럼 지지도 보고를 매일 받는다.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 다른 슈퍼히어로에게 지지도가 밀리는 것, 간단히 말해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실험실에서 키워진 그에게는 애착 불안이 있다. 시즌 1에서는 그의 애착 불안을 이용하여 그를 조종하는 인물까지 등장한다.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비교해서 그가 더 악한 이유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암시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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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건 단지 어린 시절 애착 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동의도 선택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다. 책상이나 볼펜과는 다르게 실존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실존적 불안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독이며, 중독 중 으뜸은 단연 사랑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애착관계가 '안정형'인 경우,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한다. 안정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나중에 배우자나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적이 되도록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전 인구의 몇 퍼센트나 될까? 더구나 애착 유형이 사회적 맥락에서 열성 유전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성인이 되어 또다시 화목하지 못한 가정을 만들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자기 대에서 과보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고 법륜 스님은 말한다. 애착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애착 유형이 평생 고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애착 이론가들도, 법륜 스님도 그 변화가 쉽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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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뒤의 빨랫감>이란 책은 내가 궁금해하던 아주 큰 질문에 대답을 해준 책이다. 깨달음 이후에는 마음의 평화가 영원히 유지될까? 그렇지 않다. 마음의 평화는 언제까지나 노력을 요구한다. 깨달음 이후에는 방황하는 정도가 줄어들 뿐이다. (법륜 스님을 내가 더 일찍 알았다면, 법륜 스님께 같은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실존적 불안은 인간의 숙명이다. 술도 마약도 예술혼도 사랑하는 사람도 우리를 그 불안감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한다. 단지 잠시 잊게 해줄 뿐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그것도 매순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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