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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15. 2022

글록이라 쓰고 권총이라 읽는다

[책을 읽고] 폴 배럿, <글록: 미국을 지배한 또 하나의 제국>

소설을 쓰다가 글록에 대해 알게 됐다. 중무장한 CIA 요원에게 무슨 권총을 들려줄까 하다가 발견한 것이 글록이다. 조사해보니 정말 대단한 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한 총인줄은 몰랐다.


당장 사라


우리는 더 강한 총을 원한다


1986년 4월 11일 벌어진 이른바 '마이애미 총격 사건'은 미국의 총기 옹호 세력들에게 모세의 기적과도 같다. 범죄자들이 월등한 무장을 이용하여 경찰을 죽였다. 경찰 쪽 무장은 각각 6발, 15발의 장탄수를 가진 권총이었지만, 범죄자 쪽은 20발 짜리 미니건과 8발 짜리 샷건이었다. 총기 규제 세력이 소심하게 주장하는 장탄수 제한 논리에 대해 총기 옹호 쪽은 늘 이 사건을 들먹인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난사 사고가 터지지만, 미국에서 총기를 전면 규제하자는 주장을 심각하게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수잔나 허프라는 사람은 총기 소지 찬성론을 퍼뜨리고 다니는 활동가다. 그녀는 텍사스 킬린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다. 그녀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참전용사였으나 사건 당시 총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살해당했으며, 이를 계기로 수잔나는 총기 소지 옹호론자가 되었다. 총격 사건 생존자로서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그녀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튼 미국에서 총기 규제 논란은 총기 소유 자체에 있지 않다. 무기와 탄창의 제한에 관한 것이다. 호신용으로 미니건과 20연발 탄창이 왜 필요한지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미국의 옹호론자들은 마이애미 총격 사건이나 킬린 학살의 예를 들면서 더 강한 무기와 더 많은 총알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마이애미 사건 당시 폴리스라인


등장하자마자 역사가 되다


글록 17은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육군 권총 경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상에 데뷔했다. 가스통 글록은 이전에 총이라곤 만들어본 적도 없는 군수품 제작업자였으나, 권총 구조를 공부하고 글록을 만들어 이 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인 칼 발터는 유럽 어느 조그만 나라에서 새로나온 신상을 떼어와 미국에서 팔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는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정식 공급 무기가 글록이든 아니든, 미국 경찰과 군인의 대부분은 글록을 가지고 다닌다. 예컨대 9/11 테러 이후 펜타곤은 미군의 주력 권총으로 베레타를 선택했지만, 자율 결정권을 가진 미군 정예부대는 글록을 선택했다. 사비로 구입한 글록을 가지고 다니는 경찰이란 개념은 이미 클리셰다.


미군이 점령한 이라크에서 글록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주류가 되었다. 미 의회 조사에 따르면 미군은 이라크에서 소형 화기 19만 정을 분실했고, 이중 8만 정이 자동권총이었는데 대부분이 글록이었다. 미군을 공격하는 현지 세력이 글록을 채용한 건 당연했다.


전부 다 글록이다 (좀비 세상에도 말이지)


글록이라 쓰고 권총이라 읽는다


지하 은신처에 숨어 있던 사담 후세인은 체포 당시 글록을 가지고 있었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당시 조승희도 글록을 사용했다. 노르웨이 총기난사 사건 때 아네르스 브레이비크가 사용한 무기도 글록이다.


글록은 스눕독의 노래 가사에도 등장한다. 공항에 붙어 있는 무기 소지 금지 표지의 실루엣도 글록이다. <다이하드2>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마치 글록 외판원 같은 대사를 한다.


"독일에서 만든 세라믹 권총이지. 엑스레이 기계에 걸리지 않는 건 당연하고, 당신 한 달 월급을 줘도 못 산단 말이지."


<더티해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44 매그넘에 대해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이스트우드가 자기 총에 대해서 얘기한 것과는 달리, 윌리스는 적의 권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글록이 그 정도로 대단한 괴물로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윌리스의 한 말은 모조리 틀렸다.


글록은 자동권총계의 AK-47이다. 단순한 구조로 고장이 안 나고 튼튼하다. 모래나 물이 들어가도 작동되며, 2000발을 쏴도 멀쩡하다. 플라스틱 소재라 가벼운 것은 덤이다. 쏘기도 쉽다. 오히려 방아쇠 압력이 너무 가벼워 문제다. 오발 사고가 날 때마다 글록은 방아쇠 압력을 조금씩 늘려왔다.



글록이라는 인물과 회사


글록은 콜트와 S&W으로부터 미국 총기계의 왕좌를 빼앗았다. 당연한 전개로, 이후 미국에서의 총기 규제 논란은 글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가스통 글록은 총격 사건 관련하여 몇 차례나 증인으로 법원에 출석했다. 그는 언제나 팩트만 말하는 전문가의 모습을 어필하여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1999년 7월, 가스통 글록은 측근인 에베르트와 만나는 과정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괴한은 뿅망치로 글록을 공격했으나 오히려 제압당하고 두드려맞아 실신했다. 무려 전직 프로레슬러이자 외인부대원이었던 괴한은 에베르트의 사주를 받고 글록을 공격한 것이었으며, 에베르트는 자신의 비리가 들통나기 전에 글록을 죽이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일로 에베르트는 아직도 감옥에 있다.


글록이 미국을 점령하는데 1등 공신이었던 칼 발터는 해고당했고, 미국 지사 CEO였던 폴 야누초는 횡령으로 감옥에 있다. 


현재의 글록이 있기까지 성공을 이끈 미국 진원 중에 성공과 부를 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485쪽)


글록의 미심쩍은 경영 행태에 대해 알고 있는 내부자들은 효과적으로 제거된 상태다. 그리고 93세인 가스통 글록은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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