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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17. 2022

셜록, 존, 그리고 아이린

[책을 읽고] 셜록 홈즈 시리즈 1~3권

셜록 홈즈 시리즈는 문학으로 손색이 없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 외의 창작 활동에서 참패했으나, 이렇게 훌륭한 만고의 걸작을 남겼으니 만족해도 좋을 것 같다.



<진홍색 연구>는 역시 명불허전, 최고다.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범인의 슬픈 사정을 듣는 구도는, 내가 알기로 이 소설에서 유래되었다. <김전일 시리즈>에서 가장 처절한 이야기들인 <육각촌 살인 사건>, <묘지섬 살인 사건>, 그리고 <설야차 살인 사건> 같은 걸작들이 결국 다 <진홍색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가 탐정사무소>에서 유쾌하게 패러디되는 '본 사건 전 오프닝 추리'도 이 소설에서 시작되었다.


홈즈를 처음 만난 왓슨은 그의 지식 수준을 정리하는데, 문학 지식이 거의 꽝인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홈즈는 심심할 때마다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의 문구를 인용한다. 분명히 설정 미스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작가 도일이 아닌 캐릭터 왓슨의 평가라는 식으로 충분히 무마가 가능하기도 하다.


<네 개의 서명>의 경우,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기념비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시계를 보고 왓슨의 형에 대해 추리하는 장면이 바로 이 작품에 나온다. 이 장면은 드라마 <셜록>에서 아이폰을 가지고 추리하는 장면으로 아주 훌륭하게 재해석되었다. 또한 셜록 홈즈의 최고 명대사가 바로 이 작품에서 처음 언급된다. 


"불가능한 것들을 소거하고 나면, 아무리 말이 안 돼 보여도 남는 것이 진실이란 말일세."



아이린 애들러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홈즈 시리즈를 출간 순서대로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헤미아 스캔들>이 무려 단편 첫 작품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보헤미아 스캔들>은 인기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가가 탐정 사무소>의 주인공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건으로 이 사건을 꼽았다. 시리즈를 통틀어 홈즈가 로맨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작품이니 인기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고 아이린이라는 캐릭터가 원작의 비중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원작 삽화 - 아이린 애들러의 결혼식 장면


나도 물론 이 사건을 좋아하지만, 소설적 시각에서 나는 <빈사의 탐정>을 제일 좋아한다. 비평적 시각으로는 <진홍색 연구>를 가장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도 아이린 애들러라는 인물은 엄청나게 좋아한다. 셸리가 Intellectual Beauty를 노래했을 때 떠올린 이미지가 아이린과 같은 캐릭터 아니었을까. 아름답고 똑똑하며 행동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다.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릴리에게 빠져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재해석이란 어려운 작업이다. 원작과 똑같이 만들면 따라하기라고 욕 먹고, 다르게 하면 원작 매니아들의 질타를 들어야 한다. 아마존 프라임의 <더 보이즈> 리메이크는 거의 정답 수준의 리메이크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원작 만화의 스토리를 매우 심하게 비틀었지만, 원작의 디테일들을 적극 재활용한다. 예컨대 휴이는 원작과 달리 처음에는 그냥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지만, 나중에 V24를 복용한 후에 원작 만화에서 처음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거의 똑같이 재현한다.


이런 의밍에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이린 애들러의 재해석은 아쉽다. 예컨대 영드 <셜록>에 나오는 아이린 애들러는 너무 심하게 뒤틀린 모습이다. 아이린의 천재적인 측면은 과장하고, 매력적인 측면은 뒤틀려 있다. <셜록>의 아이린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나 하나뿐이 아닐 것이다. 앞서 나온 것과 뭔가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은 결과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 문제도 있다.)



셜록 홈즈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19세기 인물이지만, 2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돌급의 인기를 구가한다. 그건 물론 햄릿이나 신드바드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셜록 홈즈의 경우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셜록 홈즈는 삽화 덕분에 이미지가 남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셜록 홈즈의 외모는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핵심은 그의 외모라든가 특징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입맛에 아주 딱 맞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독신 귀족> 도입부에서 왓슨은 셜록 홈즈의 '가늘고 긴 다리'를 언급한다. 그런데 <얼룩 끈> 사건에서 알 수 있듯, 홈즈는 완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거구의 악당이 구부린 쇠 부지깽이를 다시 원래대로 펴는 괴력을 보여준다. <네 개의 서명>에서는 아마추어 권투 선수였던 홈즈가 프로 챔피언을 매우 고전시켰다는 서술이 나온다. <글로리아 스콧 호>에서 왓슨은 홈즈가 같은 체급의 누구와도 맞붙어 이길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그가 단지 날씬한 체형인 정도가 아니라 다리가 '가늘고 길다'는 것이다. 이건 뭐 지금 패션 쇼 런웨이에 올려도 될 만한 캐릭터다.


<너도밤나무집>의 의뢰자 바이올렛 헌터는 홈즈와 엮일 뻔했던 여성 캐릭터의 대표격으로 종종 언급된다. 그녀는 '그림에나 나올 만한' 고운 갈색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되며, 똑똑할 뿐 아니라 과감한 행동력까지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녀가 홈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글을 마무리하는 왓슨의 한 마디가 너무 강렬하다. "아쉽게도, 사건이 끝나자 홈즈는 그녀에 대한 관심을 딱 끊어버렸다."


바이올렛 헌터, 존,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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