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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히말

백석의 시 중에 '흰 밤'이란 시가 있다.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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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한 짧은 시다. 하지만 내게는 마지막 한 줄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보름달이 수면을 방해한다고 한다. lunatic, 즉 달에 미친다는 게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였을 수도 있다는 거다. 시에 보름달이란 말은 없지만, 달빛이 강렬하니 흰 밤이라 했을 터다.


수절과부에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외로움이었을까. 그게 죽을 정도의 것인가. 그렇다면 노숙자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인간은 무리를 이룬다. 무리에게 배척당하면 죽기도 한다. 과부에게 수절이란 굴레를 억지로 씌우니 그 고통이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볼펜이나 자동차와는 달리, 인간은 아무 목적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목숨 같이 아끼던 존재도 결국 언젠가는 나를 떠나간다. 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너무 늦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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