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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04. 2022

사랑이란,
하나가 아니고 둘이어야 한다

[책을 읽고] 가야마 리카,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엄마가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딸이 엄마에게 간 이식을 하겠다는 의사를 아버지에게 밝히자, 아버지는 자식의 몸에 칼을 댈 수 없다고 반대한다. 딸이 이번에는 엄마한테 물어보는데, "네가 해주면 좋지"라는 대답을 듣는다. 서운한 마음에 딸은 남동생이 간 이식을 하면 어떠냐고 묻는다. 엄마는 격하게 분노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프지도 않은 몸에 칼을 대다니, 큰일이라도 나면 어떡해? 어느 부모가 그런 일을 시키고 싶겠어?" 시노다 세쓰코의 소설 <퍼스트 레이디>의 내용이다.


저자는 엄마가 딸을 마치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딸의 몸에 칼을 대는 것에 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고. 이것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나는 가족 관계 중에 엄마-딸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해왔다. 큰이모님과 딸 사이가 좋은 것을 보고 자란 탓도 있겠지만, 여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어머님과의 관계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큰딸인 경우는 더욱 친밀한 관계였다.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녀였던 큰이모님은 육남매 중 가장 심한 차별을 당하셨다.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여자들의 경우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중에는 결혼을 엄마로부터의 독립 수단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람조차 그런 식으로 엄마 곁을 떠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보였다는 점이다.


비밀이 없는 관계. 엄마와 딸 사이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비밀이 없다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일 리가 없다.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는 수직적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사노 요코는 <시즈코 상>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여성들의 뜨거운 공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엄마로 인해 자신이 받은 우울증을 토로한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저자는 70세였다. 딸에 대한 엄마의 구속은 유통기한조차 없다.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는 딸의 이야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일본 영화 <사랑을 바라는 사람>에서 주인공은 엄마의 학대를 못 이겨 가출하지만, 무심코 정한 직업은 미용사였다. 엄마가 툭 던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다시 엄마를 찾아 떠난다. 학대를 못이겨 가출했지만, 그걸 엄마에 대한 유기라 생각하고 죄책감에 떤다.


미국 영화 <화이트 올리앤더>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홀로 남겨진 딸은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잘 살지만, 어느날 교도소 면회로 만난 엄마의 한 마디에 양부모의 집을 나와 버린다. "너에게 그런 생활은 좋지 않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엄마가 툭 던지는 한 마디가 딸의 인생을 뒤흔든다.



이 책은 딸이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분노, 죄책감, 분리 불안, 애착... 그리고 나이듦과 홀로서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간병의 문제는 단지 엄마와 딸 사이의 문제는 아니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친밀한 관계에서 더욱 문제된다. 미즈무라 미나에의 <엄마의 유산>의 주인공은 간병에 지친 나머지 혼잣말로 '엄마는 도대체 언제 죽나'라고 하소연한다. 정작 엄마가 세상을 뜨자, 딸은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한 여자가 엄마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결국 의사는 딸과 엄마가 함께 상담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둘을 함께 맞이한다. 의사 앞에서 딸은 그동안 살면서 서운했던 일들을 적은 종이를 들고 읽는다. 20분 분량이다. 다 듣고 나서 엄마가 말한다.


"미안해. 근데 엄마는 네가 지금까지 말한 일들은 거의 기억이 안 나.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니?"


단지 엄마와 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나가 되는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또 하나의 엄마-딸 사이 같은 것일 확률이 높다.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상처를 딸은 기억하고 있다. 홀로서기야말로 진정한 사랑, 진정 친밀한 관계에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라는 교훈을 또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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