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Jul 21. 2022

자연과 하나로 살아가던 사람들

[책을 읽고] 시애틀 추장 등,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누구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자주. 특히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평원의 어린 안개와 지평의 한 틈을 뚫고 비쳐 오는 햇빛 줄기와 만나야 한다. 어머니인 대지의 숨결을 느껴야만 한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보거나 꿈꾸는 돌이 되어 봐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대지의 한 부분이며, 대지는 곧 오래전부터 자기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295-296쪽, 델라웨어 족 상처입은 가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성(surname)을 쓰지 않았으며, 성년이 되어 그 사람의 특질이 드러나면 참된 이름을 받았다. 그들을 식량이 필요할 때만 들소를 사냥하였으며,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서 내려오던 예언대로 재앙을 맞이했다.


인디언들이 백인 정부와 맺은 조약은 수많은 화살을 맞은 들소가 사냥꾼과 맺은 조약이나 다를 바 없다. 결국 그 들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든 것을 내주고 쓰러지는 것밖에 없다. (690쪽, 유트 족 오레이 추장)



그들이 입을 열었다


이 책은 붉은 구름, 미친 말, 제로니모, 앉은 소 등 유명한 인디언 지도자들의 연설과 기고문을 담고 있다. 상당한 수의 글들이 미국 대통령 또는 의회를 상대로 행해졌고, UN에서 이루어진 연설도 많다. 가장 의외이며, 어쩌면 또한 당연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많은 글들 중 원한이나 원망, 비난을 담은 글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화살을 맞고 쓰러져가는 들소의 입장이어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고도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뿐이다.


물론 인디언들은 반격도 했다. 제로니모는 물론, 붉은 구름, 미친 말, 앉은 소 등 유명한 인물들은 대개 백인들을 애먹였기 때문에 명성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자와 어린이들을 학살하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대개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다가 벼랑끝에 몰린 다음에야 무기를 들었다. 


위트가 넘치는 마크 트웨인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허클베리 핀 시리즈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인디언에 대한 어이없는 편견 때문이다.



몰랐던 사실들


북미 인디언에 대해 내가 알던 것들. 수(Sioux) 족. 이로쿼이 연합. 앉은 소 추장과 리틀 빅혼 전투. 운디드 니 대학살. 커스터 중령이란 인간 쓰레기. 코만치 등 여러 부족들이 보여준 놀라운 기마사격술. 토마호크. 담배. 의술사. 들소. 늑대와 춤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가 드러났다. 책 초반에는 앉은 소 추장의 연설문이 나오는데 그를 라코타 족이라 적고 있다. 앉은 소는 아마도 제일 유명한 인디언 지도자이며, 수 족 추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라코타는 아마 수 족의 분파가 아닐까. 또는 이로쿼이 연맹처럼 수 족 역시 사실은 연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이러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라코타 족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그들과 맞서 싸우는 상대방들은 그들을 나두와수 족이라 불렀다. '뱀 같은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그것을 프랑스인들이 수 족이라 잘못 옮긴 것이다. (713쪽, 오글라라 라코타 족 추장 붉은 구름)


역시 이 책에 실린 '홀로 서 있는 늑대'의 다른 설명에 따르면, 수 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다코타, 나코타, 또는 라코타 족이라 불린다고 한다. 홀로 서 있는 늑대는 캐나다 서스캐처원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수업 중에 원주민 입장을 설명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캐나다 정부는 그의 캐나다 국적을 박탈하고 추방했으며, 미국은 그의 입국을 거부했다. 정말 악랄한 박해가 아닐 수 없다.


이로쿼이 연합이 미국의 연방제 헌법에 영향을 미쳤다든가, 인류학자 루이스 모건이 펴낸 <세네카 족 인디언들과의 생활>이 칼 막스의 <공산당 선언>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과장된 느낌도 있지만,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의 시각


오늘날 사람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aboriginal people 이니 First Nation이니 부르면서 과거에 비해 진보한 시각을 자랑하려 하지만, 당사자들은 원래의 부족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며,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인디언이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한다.


미국의 많은 지명이 인디언 말로 되어 있다. 미시시피는 물들의 아버지, 아이오와는 '이곳이 (꿈꾸던) 그곳', 미시간은 큰 호수, 나이아가라는 천둥처럼 구르는 물, 켄터키는 내일의 땅, 앨러배마는 '우리는 이곳에서 쉴 것이다'라는 뜻이다.


요세미티의 이름 유래는 더욱 흥미롭다.


백인들이 계곡으로 처들어왔을 때, 망을 보던 인디언이 '요세미티!'라고 외쳤다. 인디언 말에는 침략자나 살인자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핏발이 선 곰'이라고 외친 것이다. (665)


악랄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가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글들에서, 나는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슬픔을 보았다. 그들은 외지인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나 곧 배신당했다. 무기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심지어 '얼굴 흰 자들'의 도래에 관한 민간 전승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운명에 맞서지 못했다.


생각해 보자. 압도적인 기술력의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친선의 미소를 얼굴에 띄우던 그들은 곧 본색을 드러낸다. <삼체> 제3부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70억 지구인을 제주도에 몰아넣고 자유롭게 잘 살아보라 말한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제주도에서 쓸만한 자원이 발견되자, 그들은 남은 지구인들을 울릉도로 옮긴다.


언젠가는 양심에 못 이겨 지구인들을 동정하는 외계인들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지구인들은 이미 멸종 직전까지 와 있다. 죽은 사람들이 되돌아 오는 것도 아니다. 외계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지구를 다시 돌려줄 리도 만무하다.  


오논다가 족 늑대 지파의 추장이자 뉴욕 주립대 미국학 교수인 오렌 라이온스의 한 마디로 글을 끝맺고 싶다.


환경은 이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저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이 곧 환경이다. (1282쪽)


매거진의 이전글 둔필승총 2207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