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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30. 2022

눈먼 시계공

[책을 읽고] 이언 스튜어트, <우주를 계산하다> (5)

소위 창조론을 반박할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인간이 지적 설계의 산물이라면, 그 설계자에게는 꽤 박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식도와 기도가 교차하는 것은 부적절한 설계이고, 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도 매년 다수 발생한다. 그러나 이 정도는 진화의 방향을 바꿀 만한 수준의 큰 결함이 아니다. 이 결함의 뿌리는 우리 조상이 바다에서 물고기로 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 이 결함은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475쪽)


설계에 실수가 있다는 지적에, 창조론자들은 인간이 신의 고매한 뜻을 어찌 알겠느뇨라고 대답할 것이다. <맨 프롬 어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려주고 싶다. "인간이 무지몽매해서 못 알아먹으니까, 그래서 성경을 통해 얘기하시는 거지!" "애초에 그냥 우리가 알아먹게 (창조)하면 되잖아?"


아무튼 창조론을 반박하자면 끝이 없다. 예컨대 아담과 이브의 동산에 하늘을 나는 동물이 필요하다면 왜 곤충, 조류, 박쥐가 다 필요하단 말인가? 수렴진화야말로 창조'론'을 알기 쉽게 반박해주는 개념 중 하나다.


어떤 것이 보편적인 특징임을 말해주는 한 가지 단서는 수렴진화다. 예컨대 비행은 곤충, 조류, 박쥐에게서 독자적인 경로로 진화했다. (475)


수렴진화는 각자 알아서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한 사람이 코딩을 하면서 같은 기능을 하는 함수를 세 개씩이나 만들까? 서로 다른 세 사람이 각자 코딩을 하면서 필요한 걸 만들다 보니, 같은 기능 함수가 세 개나 생긴 것이다.


창조론이 왜 존재할까? 그건 우리가 쉬운 대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 우리 조상은 번개가 무서웠고, 그 원인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통제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번개를 던지는 신을 만들어 섬긴 것이다.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쉬운 대답을 원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존재가 특별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인간이 신에게 특별한 존재라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처럼 어느날 갑자기 고속도로를 만든다고 지구를 밀어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는 보편적인 특징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지구와 비슷한 생화학은 '아마도' 국지적 특징일 것이다.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익숙한 DNA/아미노산/단백질 계의 생존 가능한 변이들이 수많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78쪽)


다시 말하는 것도 창피하지만, 창조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미개해서다. 미개했던 우리는 보이는 대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은 하나의 중요한 실체가 되었다.


불은 번식 능력을 포함해 생명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불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존재일까 아닐까? 잘못은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하려는 데 있다. (478쪽)



4대 원소의 나머지인 물, 흙, 공기는 실체가 있다. 반면 불은 현상일 뿐이다. 저자가 지적하듯, 생명체라는 것을 우리가 지구 밖에서 발견하느냐 마느냐는 생명체의 정의에 달려 있다. 우주 어딘가에 에너지 내지 정보의 흐름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는 외계문명이 있다면, 생명체의 정의는 달라져야 할 것이고, 불은 다시금 실체로서 인정될 것이다.


복잡성 이론의 창시자,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생명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기술 중 하나를 제시했다. 자율적 행위자라는 그 개념은 '스스로 번식하는 동시에 열역학적 작업 주기가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일어나는 존재'다.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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