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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31. 2022

정신과 전문의의 우울 일기

[책을 읽고]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우울증을 유발하는 계기는 상실일 때가 많다. (20쪽)


저자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상실이었다. 정서적 지지를 얻기 어려운 어머니와 달리, 때론 난폭했음에도 아버지는 저자에게 정서적 지지가 되었다. 그 아버지가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고, 저자는 5년이 지나서야 상실의 고통에 괴로워하며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다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기분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행동을 개선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39쪽)


이것이 우울증 치료의 핵심이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우울증과 싸웠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상담이었다. 특히, E라는 이니셜로 소개되는 상담사가 그녀에게 중요했다. 그녀는 그의 사랑을 갈구할 정도로 그에게 의존했지만, 그는 철저히 직업적 거리를 유지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지금이 힘들다는 것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저자의 예민한 성격, 그로 인한 과대망상, 낮은 자존감, 상실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모두 똑같았다. 그렇기에 저자의 행복을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의 결혼과 연애에 실패했으며, 그녀가 원하는 상대는 그녀를 원하지 않았고, 그녀를 원하는 상대는 그녀쪽에서 견딜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상담사 E가 자살했다. 상담 상대들 몇 명에게 자신과 사귀어야 우울증이 치료될 수 있다고 권한 것이 발각되어 정직당하고 나서였다. 상담사 윤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내가 화가 났던 이유 가운데는 그가 나와는 사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절절히 원했는데. (259쪽)


한밤중에 죽고 싶다고 연락하면, 짜증을 내다가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상담사였다. 저자가 죽어도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E는 자기가 보고 싶을 거라고 말했다. 그건 규칙을 깨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규칙을 깬 말로 인해 저자는 살 수 있었다.


ECT와 같이 과학적 근거도 불확실하고 후유증까지 염려되는 시술은 일단 배제하면 되겠지만, 약물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는 저자도 피할 수 없었다.


문제의 원인은 외부 사건이라는 게 너무나 명백한데, 알약을 먹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224쪽)


답은 의외로 싱겁다. 약은 기력 회복과 수면을 돕는다. 이에 따라 사고가 명확해지고 문제해결에 나설 힘이 생긴다. 다시 말해, 알약은 CPR이나 인공호흡과 같은 긴급 수단이다. 저자는 점점 더 강한 약을 찾아 결국에는 상당히 위험한 약제인 리튬까지 복용한다. 그리고 어느날, 변화가 나타났다.


평소 잠에서 깨면 정신이 들기 전부터 꼭 느껴지기 시작하던,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풀냄새가 산들바람에 감돌았고 새소리가 들렸다. 사라졌던 새들이 언제 다시 돌아왔을까? 아주 오랫동안 새소리를 듣지 못했었다. (228쪽)


저자는 마음챙김을 실천하여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인지행동치료로 효과를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높아질 때, 인지치료사 C가 저자에게 권했던 아래 문장을 읽어보자.


나는 지금 내가 있고 싶지 않은 곳에 있다. 주위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나도 그중 몇 사람은 정말 싫다. 야심만만하고 당당한, 저마다 저의를 감추고 뭔가 벼르고 있는 사람들. / 잠깐 멈추자. 숨을 크게 쉬자. 내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생각하자. 내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자. 그런 것들을 이루려면,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좋아할 필요도, 그들이 나를 좋아할 필요도, 그들과 비슷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 내 고양아를 무릎 위에 앉히고 귀를 쓰다듬고 있다고 생각하자. 말할 기회를 가만히 기다리다가, 숨을 다시 크게 쉬고, 최소한의 말로 내 요지를 전하자. 그리고 입 닫고 있자.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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