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Aug 02. 2022

우주는 도넛 모양일까

[책을 읽고] 이언 스튜어트, <우주를 계산하다> (7)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영화에 흔히 나오는 소행성 대의 추격씬은 한 마디로 말도 안되는 허구다. 소행성 대에 진입해서 내가 승리호의 액셀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밟아도, 소행성 중 하나와 스치기라도 할 확률은 거의 0이다. 우주는 그만큼 광활한 텅 빈 공간이다. 우주의 밀도는 0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매우 평탄한 공간에 부분적으로 고밀도의 덩어리들이 있는 우주라는 녀석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부분적인 고밀도(중력장의 휨)와 전체적인 텅 빔(중력장의 평탄)이라는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표준모형에 끝까지 집착하여 암흑물질이란 해결사를 모셔오는 방법, 둘째, 우주의 나이가 138억년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아주아주아주 더 늙었다고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셋째, 우리가 전혀 모르는 무언가다.


우주의 모양, 즉 토폴로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에 흔히 나오는 비유를 생각해보자. 가는 실 위를 기어가는 개미는 1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에 비해 훨씬 더 작은 개미라면, 그 개미는 2차원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을 질주할 수 있다. 지구 위의 인간들이 그러듯 말이다. <플랫랜드>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해가 더 쉽다. 2차원 도형들에게 3차원 세계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우주 스케일에서 우리는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다. 우주의 크기나 모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알 방법도 사실상 없다.


우주의 토폴로지를 구라고 가정하는 것은 그냥 그게 제일 쉬워서다. 관측적 증거는 전혀 없다. (557)



위상수학에서 가장 간단한 형태가 구다. 외계인을 탄소기반 생명체라 가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단 제일 쉬운 구를 우주의 모양으로 가정해보는 것뿐이다. 그리고리 페렐만이 푸엥카레 추측을 증명한 지금, 인류는 드디어 우주의 모양이 적어도 구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생겼다. 우주를 향해 무한한 길이의 끈을 맨 로켓을 쏘아보내고 회수한 다음, 그 끈을 당겨보면 된다. 아무데도 걸리지 않고 끈이 회수된다면, 즉 폐곡선이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다면 우주의 모양은 구다. (수백억 년이 걸릴테니 물론 롸켓을 매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토미 존 수술을 세 번이나 받은 이동현 투수 정도의 내구성은 필요할 듯 싶다.)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이 우주배경복사를 제대로 측정하기 전까지, 우주의 크기는 무한이라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배경복사 분포가 큰 요동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주배경복사는 매우 균질적이다. 이에 따라 우주의 크기는 유한하다는 것이 통설이 되었다.


<네이처>에 실린 표현처럼, '욕조에서는 큰 파도가 일어날 수 없다.' (558)


WMAP이 보여준 데이터를 가지고 미국 수학자 제프리 윅스(Jeffrey Weeks)는 다양한 토폴로지의 다양체(manifold)들을 시험했다. 한 가지 가능성이 데이터와 아주 비슷하게 맞았는데, 이것은 평탄한 3차원 원환면의 변형이다. 원환면은 상하, 좌우가 이어진 모양인데, 3차원으로 근사하면 도넛 모양이라 할 수 있다. 지도가 나오는 게임에서 왼쪽 끝으로 가면 보통 오른쪽 끝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가 그렇다.) 어떤 경우에는 아래 끝으로 가면 위쪽 끝에서 나오는데, (지구는 그렇지 않다) 이런 평면은 3차원에서 도넛 모양이다. 


WMAP 관측 결과와 가장 유사한 토폴로지는 원환면이다. 문제는 우주가 원환면 스타일의 토폴로지라면, 우주배경복사에 반복무늬가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산란면(last scattering surface)'이 구라고 가정하고, 그것이 우주보다 크다면, 그 구는 우주의 바깥 경계에서 wrap round 방식으로 교차한다. 그래서 산란면의 같은 점이 우주의 경계를 두 점에서 만나게 되고, 따라서 관측자(지구)를 향해 배경복사는 두 방향에서 다가오게 된다. (562)


* 자세한 설명은 책에 나오는 그림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쉽게도 구글은 그 그림을 찾지 못한다.


아시다시피 우주배경복사에 반복무늬는 없다. '마지막 산란면'이 구가 아닐 가능성도 있겠지만, 현재 인류가 가진 물리학에서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한 가지 가능성은 우주가 산란면보다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가 도넛 모양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우주는 대체 어떤 모양이란 말인가? 우리에게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563)


매거진의 이전글 블랙홀은 늪일까 끈적이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