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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31. 2022

또, 수학

[책을 읽고] 미카엘 로네, <우산 정리> (1)

아마도 올해의 책, 드디어 만났다. 작년에도 올해의 책은 수학이었다. 물론 그냥 우연의 일치다. 읽는데 전율이 흐르는 책이 올해의 책이 아니라면 무엇이 올해의 책일까. (더 전율이 흐르게 하는 책을 만나면 된다.)



벤포드의 법칙


시작은 밋밋하다. 벤포드의 법칙을 설명하려고 슈퍼마켓을 질주하는 묘사를 보니 하품이 나오려고 한다. 벤포드의 법칙을 설명하고 나서는 보통 사기꾼 찾아내는 데 쓸모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로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내기를 해보자. 한 사람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80만 킬로미터, 다른 사람은 될대로 되라는 마음에 10 킬로미터라고 말한다. 실제 값에 더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내기다. 승자는 10 킬로미터다. 실제 거리는 39.8만 킬로미터 정도다. 앞 사람의 오차는 40만 킬로미터가 넘지만, 뒷 사람은 그 안쪽이다. 수긍이 되시는지?


당연히 안 된다. 80만이라 말한 사람은 자릿수라도 맞았다. 10 킬로미터라니, 에버레스트 정상에 가면 사다리 타고 달에 갈 수도 있는 거리다.


1만이라는 숫자와 1억이라는 숫자를 직선의 양끝에 두고, 어디쯤이 백만인지 표시해보자. 그래도 <수학책>이다. 나는 1만에 매우 가깝게 표시했다. 그러나 나도 틀렸다. 아예 1만에 딱 붙여야 정답이다. 백만은 1억의 1/100이니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쯤에 백만을 표시한다고 한다. 어릴수록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인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덧셈이 아니라 곱셈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인간만 그런게 아니다. 아주 똑똑하게 설계된 쥐 실험이 있다. 벨을 두 번 울리면 1번 버튼을 눌러야 먹이가 나오고, 벨을 8번 울리면 2번 버튼을 눌러야 먹이가 나온다. 이렇게 조건반사 훈련을 완벽하게 해 놓은 다음, 쥐들의 마인드를 시험한다. 벨을 세 번 울리면 어느쪽으로 갈까? 당연히 1번으로 간다. 일곱 번 울리면? 2번이다. 그런데 네 번이나 여섯 번은? 이제 쥐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제일 헷갈리는 신호는 벨을 몇 번 울리는 걸까? 정답은 4번이다.


쥐들이 덧셈 마인드를 가졌다면, 2와 8의 중간 숫자인 5에서 헷갈려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4에서 제일 헷갈렸다. 쥐들도 인간처럼 곱셈 마인드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벤포드의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는, 인간이나 쥐뿐 아니라 이 세계가 곱셈 마인드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숫자의 맨앞자리 수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1이 제일 많고, 2, 3, 4순으로 계속 내려가는 벤포드의 법칙이 성립하지만, 그건 곱셈 마인드로 만들어진 세상을 우리가 덧셈 마인드로 세어보았기 때문이다. 로그 스케일로 통계를 내보면 고른 분포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로그의 밑은 아마도 e겠지. (이건 내 추측이니까 아니라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사족.


번역서 이름은 <잘 안다고 믿는 것을 다르게 보는 법, 수학>이다. <우산 정리(theorem)>라고 하면 수학에 관한 것인지도 모를 테니 출판사의 고민이 이해는 간다. (더구나 저자의 우산 비유는 별로 재미있지도 않다.) 하지만 저런 장황한 제목이라니... 번역 퀄은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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