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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27. 2022

수학자의 물리학

[책을 읽고] 이언 스튜어트, <우주를 계산하다> (2)

뉴턴 물리학의 위대함에 광적으로 빠져버린 라플라스는 데이터만 주어지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계산이 가능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소설을 썼다. 아쉽게도,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단연 최악이다.) 그런데 뉴턴 방정식에 물체가 딱 세 개만 등장해도 도저히 계산이 되질 않았다. 뉴턴이나 라플라스의 시대에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작은 오차도 아주 많이 누적되면 큰 오차가 된다. 때문에 아주 세심하게 고안한 방법으로 오차를 줄여야 한다. 수치해석학이 하는 일이 이것이다. (67쪽)


삼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지금도 2와 1/2체 접근법이다. 삼체 중 하나를 티끌로 가정하는 것이다. 다른 두 물체에 영향은 받지만, 그들에게 영향은 주지 못하는 티끌. 이언 스튜어트는 오차의 누적에 대해서 경고하면서도, 이런 식의 근사가 대개의 실용적 문제는 해결해 준다고 말한다.


섭동보다 작은 값의 항들을 무시하고 얻는 해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실용적 목적으로는 훌륭한 때가 많다. (168쪽)


아주 특수한 경우에 삼체 궤도는 안정적일 수 있다. 예컨대 8자 모양으로 일단 고정된 3체 궤도는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69쪽)



비 올 확률이 20%라는 숫자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슈퍼 컴퓨터가 계산한 수많은 시나리오들 중에 20%에서 비가 온다는 결과가 얻어졌다는 말이다. 결국 흔해빠진 몬테 카를로 시뮬레이션이었던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돈이 안 되는 분야에 돈을 들여 그런 계산을 했다는 점 정도랄까.


수학자의 눈으로 보는 천체 물리학의 세계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 책의 2021년 올해의 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달이 없었다면 지구 자전축 기울기는 0도와 85도 사이에서 변할 것이다. 이래서야 생명체 탄생에 매우 불리하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생명체가 탄생하고 번성할 수 있다. 해양생물체는 기후 변화에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동물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여 이동할 것이다. 자전축 변화에 걸리는 시간이 천문학적 시간 척도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육상 동물의 시간 척도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322쪽)


여기에서부터 이 책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다르게 생각하기다.


무려 3중 성계인 알파 센타우리에 문명이 발생한다는 발상을 한 류츠신이나, 원인과 결과라는 시간의 화살을 벗어난 언어 구조를 가진 외계인을 생각해낸 테드 창, 태양을 먹는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를 창조한 앤디 위어.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는 특출난 능력을 보여준다. 앤디 위어의 소설 <프로젝트 헤일 매리>에 나오는 주인공은 외계인이 꼭 물을 필요로 하는 탄소 기반 생명체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가 학계에서 매장당한다. 그는 결국 수은 순환계를 가진 암석 외계인, 록키를 만나면서 자신이 옳았음을 확인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공상을 했으며, <마스터 오브 오리온>이라는 게임을 통해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전개다. <우주에서 우리처럼>의 저자 아베 유타카가 말하듯이, 물을 필요로 하는 탄소 기반 생명체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현재 학계의 연구 방향은 사실 경제성 때문이기는 하다.


어쨌든, 이 책이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이제부터다.


기존의 학설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이 만들었다. 그러나 2001년, 에릭 파이겔슨과 공동 연구자들은 오리온성운에서 젊은 별 31개를 발견했다. 모두 태양 정도의 크기인데, 매우 활동적이어서 태양 플레어보다 100배나 강한 X선 플레어를 약 100배나 더 자주 내뿜고 있다. 이 X선 플레어 속의 양성자들은 에너지가 충분히 강해서 무거운 원소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즉 초신성 가설은 수정되어야 한다. (394쪽)



***** 이하 밑줄과 메모 모음 *****


섭동 자체는 방정식으로 풀기가 훨씬 더 어렵지만, 섭동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비교하면 n체 문제를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섭동보다 작은 값의 항들을 무시하고 얻는 해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실용적 목적으로는 훌륭한 때가 많다. (168)


당신이 우주선을 타고 소행성 대에 진입한다면, 수백 개의 바윗덩어리가 주변을 날아다는 모습 같은 것은 절대로 볼 수 없다. 필시 아무것도 보지 못할 확률이 높다. (196) -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카이퍼 벨트나 오르트 구름은 더 하다.


해왕성의 위성인 트리톤은 다른 위성들과 반대 방향으로 돈다. 이는 트리톤이 해왕성에 포획되었음을 시사한다. 트리톤은 나선을 그리면서 천천히 안쪽으로 다가가는 중이고, 36억 년 뒤에는 로슈 한계에 이르러 산산이 분해되고 말 것이다.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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