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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02. 2022

일단은, 미워도 표준모형

[책을 읽고] 이언 스튜어트, <우주를 계산하다> (8)


표준모형의 핵심인 빅뱅은 현재 진화 만큼이나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하는 것이 이언 스튜어트의 기본 자세다. 일단, 저자는 빅뱅 모형의 이런저런 재미있는 특징을 설명한다.


빅뱅 우주 모형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은하는 물론 개개 은하단도 팽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577)


빅뱅 모형에서 팽창하는 것은 은하단 사이의 공간이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공간이란 단어를 좀 주의해서 써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에서 공간은 그냥 텅 비어있음을 뜻했지만,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파악한 뉴턴적 우주에는 뭔가가 채워져 있어야 했다. 바로 에테르다. 근대물리학에서 우주란 에테르는 아닌 물질의 분포 내지 중력장으로 이해하면 되었지만, 양자역학 덕분에 이제는 그것도 아니다.


빅뱅 모형에서 말하는 우주의 팽창은 정확히 말하면 우주 자체의 팽창이다. 고무풍선 비유로 설명하려는 게 바로 그거다. 다만, 고무풍선 위에 표시된 점들은 별은커녕 은하도 아니고 은하단 이상의 구조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먼거리에 있는 은하들은 결국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우리가 보는 은하들의 모습은 먼옛날 그들이 내뿜은 빛들이다. 우주의 팽창률이 미래에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우주는 계속 팽창할 수도, 평형 상태에 이를 수도, 다시 수축할 수도 있지만, 팽창하는 동안 우리에게 보이는 우주는 점점 더 작아진다. (100년도 못사는 우리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100년도 못 살면서 쯧쯧


우주가 계속 팽창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 은하단(아마도 밀코메다의 후예)뿐일 것이고, 그때 우리 은하 어디에선가 문명이 발생한다면, 그들이 지어내는 우주 신화는 인류의 것과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아시다시피, 초기의 빅뱅 모형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은 물질이 덩어리지기에 너무 짧다. 한편, 그것은 우주의 평탄성을 설명하기에도 너무 짧다. 알다시피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된다. (588)


이 문제를 해결하러 나온 이야기가 바로 인플레이션 가설이다. 초기의 밀집 우주에서 물질들이 덩어리진 다음, 아주 짧은 시간에 매우 폭발적으로 우주 자체가 팽창해버리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이 이론을 <월간 뉴턴>에서 처음 접하고 엽서에 관련 질문을 써 보냈는데, 가볍게 씹히고 말았다. 뽑히는 독자 엽서는 대개 '공룡은 왜 멸망했나요?' 같은 질문들이니 씹히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인플레이션 가설은 매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모두가 지지하는 건 아니었다.


로저 펜로즈는 인플레이션 없이 우리 우주를 낳는 초기 조건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초기 조건보다 1구골플렉스(10^10^100) 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플레이션이 없는 쪽이 훠얼씬 더 그럴듯하다는 말이다. (597)



이 책을 쓸 당시는 아니었지만, 로저 펜로즈는 얼마 전에 드디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인플레이션 가설을 지지하는 진영에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우주론자들은 현재 주류 모형인 표준 모형 aka 람다CDM(람다 차가운 암흑 물질)에 큰 자신감을 보인다. 대부분의 관측 결과와 잘 맞기 때문이다. (589)


그러나 이언 스튜어트가 지적하는 점이 바로 그거다. 표준모형은 관측 결과와 잘 맞는 것이 아니라, 관측 결과와 잘 맞도록 온갖 땜빵과 수선이 되어 있는 것이다. 표준모형은 모순이 생길 때마다 아주 기괴하며 대개 관측한 적도 관측할 수도 없는 개념을 도입해왔다. 인플라톤이란 또 하나의 입자를 포함하는 인플레이션 가설은 수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제일 악명 높은 것은 단연코 암흑물질이다.


표준 모형의 또 한 가지 문제는 은하 바깥 지역이 뉴턴(내지 아인슈타인) 중력 이론이 예상하는 것보다 너무 빨리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표준적인 답은 암흑 물질이다. (598)


보이는 물질들의 중력만으로는 우주가 당장 폭발해 산산이 흩어져 버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계산 결과에서 암흑물질은 시작되었다. (그랬더니 팽창 속도가 충분히 안 나와서 이번에는 암흑에너지를 도입했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량이 관측결과와 맞지 않아서, 관측 안되는 질량이 왕창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렇게 땜빵을 해놓고 '관측 결과와 잘 맞는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왠지 우습지 않은가?


균일성의 결여로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아도 현재의 관측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 우주는 가장 큰 척도, 즉 은하단과 거대 공동의 척도에서 불균일하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반면, 표준 모형은 아주 큰 척도에서 이런 불균일성이 반반해진다고 가정한다. 거품 덩어리가 개개의 방울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까이에서 바라보지 않는 한, 반반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601)


스피처 우주 망원경 관측 결과, 불과 10억 년 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일 만큼 적색 이동이 아주 큰 은하들이 발견되었다. 그런 은하라면 젊고 뜨거운 푸른 별들로 가득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늙고 차가운 별들로 가득했다. 이것은 이 은하들이 빅뱅의 예측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른 증거도 있다. 일부 적색 거성은 현재 상태에 이르기 위해 138억 년보다 더 시간이 걸리는 상태에 도달해 있다. 또한 적색 이동이 아주 크게 나타나는 거대 초은하단들도 현재 우주의 나이로는 형성에 시간이 부족하다. (606)


아무튼, 결론은 이렇다.


빅뱅 역시 그 기반이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500년 뒤에는 우주론자들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이론들을 홍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6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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