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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3. 2022

잘 죽는 법

세바스천 세풀베다,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들>

이 책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을 소개한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완화치료를 택하는 사람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연명치료를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명치료를 거부했다가 정작 상황이 닥치는 자신의 결정을 뒤집는 사람들. 죽음은 극한의 자기 부정인 만큼, 이들을 나약하다 비웃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무엇이 현명한 결정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어가는 장발장과 같은 모습의 죽음을 모두가 꿈꾸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절대 다수는 병원 침대에서 숨을 거둘 것이다. 현대 의학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거나 스스로 숨 쉬지 못하는 환자를 강제로 호흡하게 할 수 있다. 심정지는 일시적인 심장마비와는 전혀 다른 증상이다. 심장마비의 생존률은 79%~89%이지만, 심정지의 생존률은 10%에 불과하다.


심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압박을 받게 되면 심장도 부서진다. 심정이 이후에 소생되더라도 몸이 워낙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 때문에 환자의 90퍼센트 내지 95퍼센트가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62쪽)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연명 의료 거부와 치료 거부가 다르다는 점이다. 연명 의료 거부 의향서는 대단히 구체적으로 작성할 수 있다. 무조건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 특정 의료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통상 심정지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거부, 또는 자가 호흡 불능 조건에서 인공호흡 처치 거부 등으로 나타난다. 연명 의료 거부를 선택한 환자가 그렇게 하지 않은 환자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그런 일은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는 호흡이 멈춘 경우의 소생술에 비해 심정지 상황에서 실시되는 소생술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심장이 멈추면 뇌로의 혈액 공급이 멈추기 때문에 2~3분 안에 사망하며, 살아남는 경우라도 영구적 장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호흡이 멈추는 경우는 훨씬 덜 다급한 문제다.


심폐소생술 거부와 인공호흡기 거부 중 하나만을 선택한다면 심폐소생술 거부를 선택해야 한다. (388쪽)


복잡한 목록을 작성해야 하는 선택적 연명 의료 거부 대신 '연명 의료 거부'라는 간단한 선택지도 있다. 이 경우, 의료진이 연명 의료 행위의 득실을 따져 어떤 소생 치료를 거부할 지 결정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2018년부터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 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환자의 연명 치료 일화가 소개된다. 연명 의료 거부 의향서를 작성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의향서를 철회하는 사람, 의식 불명이 된 환자의 연명 의료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 가족들, 본인은 연명 의료를 거부하였으나 연금이 필요한 가족이 억지로 살려두는 경우, 가벼운 병증이라 생각하고 병원에 들렀다가 연명 의료 상황에 직면하는 환자...


분명하게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이 드러나는 케이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연명 의료에 관한 결정은 도덕이나 이성의 잣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죽음을 맞을 것이냐 하는 결정은 그야말로 결단일 뿐이다. 그 결단을 내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평소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경우라도, 추후에 작성 당시 당사자의 정신 상태가 말짱했느냐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암과 같이 완치가 불가능한 진행성 질환의 경우라면 정답이 확실하다. 죽음이 분명하게 예정되어 있지만, 그때까지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니까. 이 경우라면 되도록 일찍 연명 의료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p.s. 저자는 독실한 불교도인 중국계 미국인이 팔정도를 따르느라 연명 치료에 매달렸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팔정도를 따르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설익은 지식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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