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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2. 2022

이미 늦었지만, 알고 싶다

[책을 읽고] 클라아스 부쉬만, <죽은 자가 말할 때>

법의학자가 말하는 다양한 죽음들. <그것이 알고 싶다>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첫 에피소드부터 자연사다. <소년의 복수>처럼 드라마틱한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일어날 만한 사고로 인한 죽음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인체의 비어 있는 곳(체강)을 찌르면 살의가 추정된다는 것을 아는지, 사람들은 몸통 대신 팔이나 다리를 찔러 과다출혈로 죽게 하는 방법을 애용한다. 특히 서혜부는 지혈이 어려워 이런 용도로 딱이다. 


시체 중 가장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익사체다. 널리 알려진 도시전설과는 달리, 산(acid)을 이용해 시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체를 유기하는 사람들은 시신을 토막내는 단계보다 토막낸 다음에 버리는 단계에서 더욱 멘붕을 겪는다.



저자는 법의학자의 입장에서, 시신의 상태와 특징에 대해 서술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살인범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히 암울한데, 살인범들의 상당수가 법망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에도 처벌 수위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잦다.


가장 열 받는 에피소드는 분명한 의료과실을 입증하지 못한 사건인 <실패한 소생술>이다. 이 사건에서 양악 교정 수술 중 사망한 여자의 남편은 3년간의 소송전에 지쳐 결국 몇 만 달러에 합의하고 만다. 미국이었으면 수백만 달러였을 거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갑자기 의식을 잃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수 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의료진은 그 모든 단계에서 실패했다. 특히 기도 절개 위치가 잘못된 것이 상처로 그대로 남았는데도 의료과실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저자는 응급구조사로 일하다가 공부를 해서 법의학자가 되었다. 독일에서도 이런 케이스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케이스는 아예 가능하지 않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돈이 신이 된 세상에서 유럽이 그나마 좀 살 만해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의사들 농담에 이런 게 있다고 한다. 외과의는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내과의는 모든 걸 알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법의학자는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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