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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18. 2022

나도 댕댕이 너무 좋아하지만

[책을 읽고] 클라이브 윈, <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나는 집에 개가 없었던 몇 년의 기간보다 내 인생의 일부로 제포스를 받아들인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확신한다. (480쪽)


자칭 행동주의 과학자의 연구를 소개하는 책이지만, 그냥 애견가 아저씨의 절절한 애견 선언서 같은 느낌이다. 오해 마시길. 나는 댕댕이를 매우 좋아한다. 아토피가 악화되어 지금은 키우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팀'이란 이름의 푸들과 '꺽정이'란 이름의 말티즈를 키웠다. (팀은 <주라기 공원>의 꼬마 남자아이 이름에서 따왔고, 꺽정이는 몸집이 너무 왜소해서 튼튼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꺽정이와 같은 말티즈인 경태


이 책은 쓸데 없이 길게 쓰여 있다. 예컨대 A 지역에서 사는 B 박사의 연구를 소개한다면, 우선 A 지역까지 가는 여정과 현지 호텔 등을 길게 묘사하고, 그 다음에는 B 박사를 만났더니 그의 인상은 어떻고 함께 아는 C 박사와의 추억이 생각난다는 둥 이야기를 길게 한다. 간단히 말해 잡담이 책 분량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유명한 국내 진화과학자 중에도 글을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특질은 문화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실제로 저자가 한 실험은 몇 되지 않으며, 결론은 간단하다. 개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개의 유전자에 '사랑하는 능력'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며, 개는 단지 인간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어린 거위 새끼처럼) 어린 시절 스스로 각인한 존재에 사랑을 쏟아붓는다. 끝.


저자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제7장에 나온다. 동물복지법의 미흡한 점, 유기견보호소의 실태, 근친교배로 인한 순종견들의 선천성 질환 등을 다룬 제7장은 애견 행동 수칙으로 끝을 맺는다. 나도 십분 공감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유기견보호소에서 개의 종류를 식별하는 표지를 떼어내자 입양률이 올라갔다는 내용은 당장 실천할 수 있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유기견보호소에 있는 개들은 95% 이상 잡종이며, 식별표의 내용은 90% 이상 틀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견종, 예컨대 골든 리트리버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을 머리에 담고 유기견보호소를 찾는 사람은 원하는 견종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개들을 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식별표를 떼면 아무런 선입견 없이 개들을 만나게 되고, 만남은 입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딱히 댕댕이라는 특정 종에 국한해서는 아니지만, 나는 저자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쨌든 두 종의 구성원 사이에 사랑으로 맺은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달리 생각하면 그 두 종에 속한 개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474쪽)


사람들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 말만 가슴에 담아두어도, 댕댕이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 이하 밑줄 ***


- 개에 대한 체계적인 과학적 접근을 보여준 책은 찰스 다윈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다. 다윈은 개의 감정이 어떤 표정으로 나타나는지 탐구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예컨대 개의 행복한 표정은 화났을 때와 매우 유사하다.


- 개의 가축화 기원에 관한 가장 유력한 가설은 스캐빈저로서 개들이 인간의 주거지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개의 사랑은 종을 따지지 않는다. 양치기 개가 그러하며, 어릴적부터 고양이와 같이 자란 개들이 종 차원의 숙적(racial enemy)인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 서커스에서 보듯,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개를 길들이는 일은 너무 쉽다.


- 개는 사람과 '안정적 애착'을 형성한다. 사람과의 차이라면, 개는 새로운 사람(주인)과 애착을 형성하는 유연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능력 때문에 유기견들은 새 주인을 만나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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