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 수 있을까
법륜 스님의 가르침, 즉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행복이나 쾌락 역시 추구하지 아니하며 사는 것이 과연 중생인 우리에게 맞는 처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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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견해는 부처님이 제시하신 가르침과 같다. 즉 삶은 고통이며,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
평정심이란 결국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며, 구체적으로는 외부 자극에 좌우되지 않는 중립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대부인 스티븐 코비조차 '자극은 외부에 있으나 그에 대한 반응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대개의 자기계발서는 외부 자극이 어떠하든 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것이 <시크릿>에서 론다 번이 주장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론 이와 전혀 다르다.
외부자극에 대해 우리가 언제나 행복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비법을 터득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한 상태에 우리는 적응하며, 그것이 곧 '중립적'인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우리를 좌절시키는 불행도 어떤 이의 불행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수 있다.
최근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을 읽고 노예 생활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목화농장의 노예들은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이 아무리 고통받아도, 흑인 노예들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해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단지 중립적인 마음 자세를 유지하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해야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무리 불행하다고 느껴도, 현실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은 것이 보통이다.
법륜 스님이 늘 말씀하시듯,
공부 안 하는 자식이 학교에 나가지 않는 자식보다 낫고,
학교에 나가지 않는 자식이 불효하는 자식보다 나으며,
불효하는 자식이라도 죽은 자식보다는 나은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이해하고 나면,
세상일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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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책에서도, 방송에서도, 사람들은 단지 고통을 피하는 것 이상을 원한다.
즉문즉설 방송에 나온 한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투자로 날렸다고 하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유흥이라도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법륜 스님은 그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라 얘기하셨다.
그러나 질문자는 납득하지 않았다.
세속적 행복을 누려보고 싶다고 고집했다.
그 말을 듣고, 법륜 스님이 지적하셨다.
"질문자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다."
SNS로 도배되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나의 '보통'과 남들의 '최고'를 비교한다.
SNS에 올라오는 쾌락의 증거 사진들은 그들 삶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매일 그렇게 산다고 가정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분노한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오로지 행복 추구만이 삶의 목적인 세상을 묘사했다.
그 책을 읽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절대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부처님도, 법륜 스님도, 올더스 헉슬리도 행복의 추구는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세의 황제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말이다.
제프 베조스도 일론 머스크도 원래부터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으니까.
우리도 노오력을 하면 그런 극단적인 쾌락을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을 싹쓸이한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항변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삶의 소소한 행복이라고.
소소한 것이 무엇이냐 따지고 들면 답이 없을 수 있는 순환고리다.
그러나 정말 소소한 행복을 원하는 것이라면,
투자로 전재산을 잃은 사람도, 그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도, 아니 노예조차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의 평온을 추구하면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즉, 내 생각은
부처님도 법륜 스님도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까지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륜 스님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시나요?
자주 묻는 이 질문에 법륜 스님은 여러 차례 대답하셨다.
고통도 행복도 느끼지만, 다만 그 진폭이 상대적으로 작을 뿐이라고.
중생인 우리는 그 정도에 타협해야 할 것이고,
그것조차도 우리에게는 대단히 버거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