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를 쓰다보면, ~했는데 그나마 ~여서 다행이니 감사하다 라는 패턴이 주로 나타난다.
비가 심하게 와서 우산을 썼는데도 옷이 다 젖었는데 그나마 머리는 안 젖어서 다행이라든가,
요리하다가 고기가 탔는데 먹을 수는 있으니 다행이라든가,
저녁도 못 먹고 야근 중이지만 그래도 직장이 있는 게 어디냐 라든가...
이런 얘기를 처음 들은 건 중학생 때였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녀온 증거로 주보를 내놓으라는, 요즘 같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인권 탄압 학교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예배 시간이 있었다. (성경공부 시간은 별도로 한 시간 더.)
어느 예배 시간, 설교 주제가 '범사에 감사하라'였다.
얘기인즉슨, 부엌 선반이 무너져서 접시가 다 깨졌는데 그나마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감사르~
어린 나이에 나름 신선하게 느껴졌는지 아직까지 기억한다.
감사일기를 쓰려고 생각하면, 쓸 것이 없는 날이 수두룩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책들은 말한다. 일단 써보면 감사할 일 많다고.
그런데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나는 것들이 대개 저런 식이다.
대미지 80 먹었는데 100 안 먹은 게 어디냐는 식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블로그 이웃들 글을 봐도 감사일기는 대개 저런 식이다.
예컨대 루나가 작살나서 돈 날렸는데, 거기에 전 재산 안 넣은 게 어디냐는...
그러나...
감사할 일은 많다.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감각은 무뎌진다.
감사일기를 쓰는 것은 인식의 문제다.
마음챙김의 하나다.
내가 그렇게 모지리도 못 하는 마음챙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