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하기 힘들다
드라마 <테드 래소>에서 구단주는 신임 감독의 출근을 매일 아침 기다린다. 그가 가져다주는 쿠키 때문이다. 부하직원을 시켜 그 쿠키를 어디에서 파는지 알아보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쿠키는 테드가 직접 만든 것이니 당연했다.
나는 슈바르츠발트퇴르테(검은숲케이크)를 매우 좋아한다. 스위스 살 적에는 저녁 먹고 한 개를 뚝딱 해치울 정도였다. 워낙 폭신해서 홀(whole) 케이크 한 개라 해도 무게는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것도 맛있었지만 쇼콜라티에 치렌에서 파는 것은 초콜릿 맛이 무척 진했다. 그러나 단연 최고의 것은 내가 그곳을 떠나기 직전에 린다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보니, 그녀가 대답했다. 직접 만든 것이라고.
다들 비슷하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바닐라라는 단어의 뜻이 '없음' 또는 '기본'인 줄 알았다. 초코 아이스크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비교해 보면 답이 딱 나오니까. 바닐라라는 것을 직접 본 것은 한참 나중이었고, 비싼 가격에 놀랐다. 그걸 첨가해서 겨우 '아무 맛도 안나게' 하는 것은 왠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지금까지 진짜 바닐라를 먹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린다가 슈바르츠발트퇴르테에 진짜 바닐라를 넣었다면 모르겠다.)
다음은 데이비드 케슬러의 <과식의 종말>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가 푸드 테크놀로지 컨벤션에 방문했을 때의 대화다.
"이 음료수에는 코코아 가루가 얼마나 들어 있습니까?" 나는 부스에 있는 식품과학자에게 물었다.
"극히 소량입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진짜 재료를 넣지 않고도 그 비슷한 맛을 내는 겁니다." (케슬러, 248쪽)
산업화된 식품이라는 게 그렇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음식을 즐길 수 있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 같이 생긴 것'들이다. 예컨대 콤부차라는 것은 발효차다. 진짜 콤부차의 거품은 발효의 결과다. 그러나 내 책상에 놓여 있는 콤부차 스틱은 가루에 물만 타면 '콤부차 비슷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 거품은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의 화학반응이다. 그런데 이 사례는 양반인 축에 속한다. 그나마 천연 재료 아닌가.
아래 신문 광고에서 볼 수 있듯, MSG를 산업화한 아지노모토 덕분에 갑자기 (일본 본토는 물론) 조선 팔도 모든 며느리가 맛의 달인이 될 수 있었다. 1910년대 이야기다.
산업화된 식품의 공은 분명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 굶주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산업화된 식품은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이며, 가장 영향 받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는 언제나 사회문제로 연결된다.
추석이다.
내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맛있는 진짜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릴 적 외할머님께서 만들어 주시던 음식들을 이제는 접할 수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오이지, 식혜, 깨강정... 그런 음식들을 접하게 되지 못하면서 외할머님에 대한 추억도 희미해져 가는 느낌이다.
시인 백석이 보여주듯, 음식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