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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13. 2022

고구려가 고구려했다

[책을 읽고] 김진명, <고구려>

Old-Fashioned 웹소설


<신조협려>를 읽을 때 독자들이 빡치는 장면이 2개 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고구려>를 읽을 때도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빡칠 것 같은 장면들이 있다. 하나는 소청이 마치 장기말처럼 버려지는 장면,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미 결말을 아는) 사유가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무를 대신하여 태자로 책봉되는 장면 아닐까. 사유가 왕이 안 되면 스토리 전개가 안 되니까 그건 그렇다고 쳐도, 소청이 왜 죽어야 하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소청이 죽는 장면은 믿기지가 않아서 10번 정도 다시 읽은 듯.


김진명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확실히 재미는 보장하는 작가인 듯하다. 요즘 데뷔하였다면 아마 웹소설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엄친아 대신 찐따가 왕이 되었어요>라든가 <애인이 100명이니 한두 명쯤 죽여도 괜찮아> 같은 소설이 나왔을 듯. (웃자는 얘깁니다. ㅋㅋ)


소용녀 때문에 책 한 번 집어던지고...


막강한 세팅


<고구려>의 강점이라면 역시 막강한 세팅을 첫 손에 꼽아야겠다. 삼국지라는 세팅은 언제나 통한다. 그래서 <고구려>도 삼국지다. 백제, 신라는 아직 고구려에 비빌 상대가 못 되니까, 최비의 낙랑, 그리고 모용외의 선비족이 고구려와 함께 세 꼭지점에 선다. 모용외야 역사에 족적이 뚜렷한 선비족 영웅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모용외에 한번 맞선 것 외에는 별 기록도 없는 최비가 (그것도 낙랑군 대빵으로) 등장하는 것은 좀 뜻밖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고대 역사를 배경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때 좋은 점이다. 기록이 별로 없으니 상상의 나래를 마음대로 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용외는 그냥 장비다. 아무 때나 목 댕강 하는 것이 특기다. 역사속의 모용외는 유학에 관한 저작을 남길 정도로 학식이 있는 사람인데, 이 소설에서는 그냥 노지심이다. 그 아들인 모용황도 경학을 즐긴 지적인 인물인데,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보다 한 술 더 뜬 인간백정이다. 거의 이규급. 모용외의 부하들도 묘사가 다르지 않아, 모용부는 마치 동물농장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나오는 모용수는 아니지만.)


역시 무식한 걸로 치면 장비, 무송, 노지심보다도 이규


반면 최비는 제갈량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사마씨 일족들을 하나씩 만나서 팔왕의 난을 조장한다. 다시 말하해, 삼국을 통일한 서진이 50년 만에 망한 것이 최비 때문이라는 거다. 마음속에는 영원한 주군 사마염 한 사람만 들어 있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후손들에게 뭐 하는 짓이야?)


그렇다면 주인공 을불은? 무력으로는 모용외, 지력으로는 최비 수준을 능가한다. 애초에 게임이 안 된다. 게다가 근육머리만 모인 모용씨족, 무력이 다소 딸리는 낙랑 진영에 비해 인력 풀도 우수하다. 여노, 아달휼, 고노자가 다 관우급이다. 물론 모든 스탯을 100으로 찍은 인물은 을불 본인이다.



화끈한 전개


또 하나 이 소설의 강점은 웹소설에서나 기대할 만한 화끈한 전개다. 역사라는 큰 틀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 제약만 지키면 대개 사이다 전개다. 숙신 진영에서 도적질을 해서 민심을 얻는(!) 전개는 정말 웹소설에서나 볼 만한 이야기 아닌가? 이럴 바에야 김용 무협지에서 맨날 나오는 기연을 활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배고파서 길에 떨어져 있는 과일을 먹었더니 내공이 10갑자 증가하고, 웬 거지를 도왔더니 홍칠공이고...


역사라는 큰 그림을 어기지 말아야 하므로, 화끈한 전개는 을불이 아직 도망자 신분이었을 때가 제일 화끈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제1권이 제일 재미있다.



쓸데없이 고퀄


차도살인의 계를 실행하기 위해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전개를 독자들이 과연 (사이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대중소설에서 보고 싶어 할까? 계책을 실행하는 것이 을불이 아니라 아영이지만, 그건 그냥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대신 주변 인물들이 손을 더럽혀주는 것은 심하게 남용되는 전개다.


소청과 무는 주인공의 곤궁을 해결해주기 위해 소모되기에는 너무 고퀄 캐릭이다. 어차피 둘 다 가공인물이니 상상의 나래에 제한은 없다. 그러나 일회용품처럼 소모시킬 캐릭을 그렇게까지 공들여 디자인할 필요가 있을까?


예컨대 소청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인 아달휼이나 고노자는 (물론 실존인물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그녀에 비해 디테일이 거의 없다. 어차피 나중에 그냥 버려질 무라는 인물을 위해 엄청 중요한 인물인 여노가 희생되는 것도 아주 독특한 캐릭 소모 방법이다. (참고로, 여노는 극 초반부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을불과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인물이라 무협지급이다.)



소결


친구가 이 소설을 권하면서 3권까지는 아주 괜찮고 5권까지는 읽을 만하며 그 다음은 좀 별로라고 말했다. 다 읽고 나니, 친구의 평이 아주 정확하다. 다만, 3권은 매우 빡치는 전개가 다수 등장하므로 약간 경고가 필요하다. 특히 3권 끝부분은 일본식 제국주의를 보는 듯하다. (갑자기 <비상선언> 생각나네.)


4권 이후가 덜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사유의 초기 전개도 괜찮았고 (뒤에서 다 망가지지만), 구부라는 캐릭터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구부와 단청 사이의 담백한 사랑도 느낌이 좋았다.


완성도만 보면, 1권만 읽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1권을 끝내고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면, 여러분도 계속 읽게 될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나는 구부 역으로 지창욱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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