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Sep 14. 2022

악인의 정체를 알려주마

[책을 읽고] 줄리아 쇼, <우리 안의 악마> (1)

내가 장담하는데,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당신을 악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다. 당신은 육식을 하는가? 금융업계에서 일하는가? 혼외 자식을 두고 있는가? (16쪽)


우리는 악을 행하는 악인이라는 종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들과 엮이지만 않으면 된다. 타자화를 통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심리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악은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악이 행해지는 맥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자신을 독립된 인간이 아닌 특정 집단의 일원으자 익명인 존재로 생각하는 몰개성화. 둘째, 피해자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간주하는 비인간화. 이 두 가지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형태라면 나치와 왜놈들의 전쟁 범죄를 들 수 있다. 가장 손쉽게 나타나는 형태로는 악플을 생각할 수 있다.



살인


UN에 따르면 2012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만 명이 살인당했다. 대부분의 살인은 남자가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가해자의 95%, 피해자의 79%가 남성이다.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을 불러온다는 기존의 인식은 신규 연구 결과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주장도 있고,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이 아니라 경쟁심과 관련된다는 연구도 있다.


남성이 살인을 더 많이 저지르는 이유는 분노의 역치가 낮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문제 해결에 있어 남성이 공격이라는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짝짓기 상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는 동물들을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철로를 굴러내려오는데 다섯 명 대신 한 명을 희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상황 설정도 다양하다. 이런 윤리적 딜레마가 워낙 재미있는지, 요즘에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를 전차학(trolleyology)라고 부른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차학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다. 자율주행 알고리즘에 핵심적으로 포함되는 문제가 바로 그런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소름끼치는 사람


어떤 사람이 소름끼치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소름끼치는 사람을 우리는 비인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름끼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그들은 우리를 두렵거나 불안하게 만든다. 둘째,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존재가 소름끼친다. 셋째, 그들은 아마 우리에게 성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얼굴은 평균적인 얼굴이라는 사실을 1990년에 두 연구자가 입증했다. 데이터베이스에 더 많은 얼굴을 입력할수록, 사람들은 평균값으로 나오는 인물 이미지를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다시 말해, 평균 이상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다른 것에 적대적이 되기 쉽다. 소름끼친다는 느낌은 바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에서, 가해자가 얻는 이득은 피해자가 입는 피해에 비해 작다. 이 불균형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가 단지 이득을 위해서 범죄를 행한 것이 아니라 악행 자체를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를 소름끼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성향을 가진 악인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정확도가 매우 낮다. 노벨상 수상자와 지명수배자들의 사진을 무작위로 보여주고 가려내라고 한 실험에서, 사람들은 50%를 조금 넘는 정확도를 보였다.



소결


이 책은 악이라는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면서도 체계적이다. 몰입해서 읽는 바람에 만 하루도 안 결렸다. 배운 점도 많다. 다만, 저자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고 싶다.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저자는 채식주의의 어느 스펙트럼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육식하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이 책은 육식이나 채식에 관한 책이 아님에도, 저자의 관점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첫째, 저자는 책을 체계적으로 쓰는 재주에도 불구하고 논점 이탈이라는 아주 커다란 구멍을 이 역작에 골고루 뿌려놓았다. 자신의 작품을 망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저자는 은연 중에 육식하는 사람들을 악인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런 믿음, 즉 악행을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고 악인이라는 별도의 속성을 규정하는 것은 이 책이 반박하려는 바로 그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즉 거짓말을 책으로 쓴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이타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법륜 스님 말씀을 빌리자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이 이타적인데도 상대방이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그들은 성을 내고, 남들을 비난하고, 스스로 우울증에 빠진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 법륜 스님 말씀이고, 이 책의 결론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었다니, 기가 막힌다.



사족이긴 한데, 저자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진실일 수 있다. 진리의 일관성 이론(coherence theory)에 따르면 말이다. 내가 이 책을 거짓이라 말하는 걸 보면, 나는 다수파인 진리의 일치성 이론(correspondence theory) 쪽인가 보다.


*********


다음은 버리기에 아까운 짜투리 밑줄 모음.


- 온라인에 글을 쓸 때는 법정에서 증거물로 쓰인다고 가정하고 써라.


- 성폭력을 권력 지향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오히려 권력이 수단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지향하는 이유는 권력이 일탈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결국 권력 지향이란 얘기잖아. 뒤에 하나가 더 서 있다고 해서 중간기착지를 우리가 거치지 않는 건 아니지.


- 물고기는 포유류 식의 통증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울증에 빠진다. 실제로 항우울제 효과 분석에 물고기가 쓰인다.


- 규칙을 파괴하는 것과 독창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비슷한 사고 패턴이다. 우리 모두가 가진 일탈에의 유혹은 우리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 그래서 진화과정에서 사라지지 않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려가 고구려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