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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15. 2022

노숙자는 게으르니 어쩔 수 없다?

[책을 읽고] 줄리아 쇼, <우리 안의 악마> (2)

지금  세계에 2700 명의 노예가 있다


케빈 베일스는 현대 노예제를 집중 탐구하는 사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M2rCIUdeI


노예가 되는 가장 흔한 사례는 직장을 구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따라가는 경우다.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과 똑같다. 문제는 그때로부터 시간이 170년이나 흘렀다는 점이다.


위 영상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700만 명에 달하는 노예가 존재하고, 이들의 노동으로 연간 40조 달러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이들을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모두 합쳐 10.8조 달러다. 문제가 보이는가? 노예 비즈니스가 현대에도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수익성 때문이다. 노예를 부려 40조 달러를 버는 노예주들은 절대 10.8조 달러에 노예를 해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베일스)가 만나서 인터뷰한 실제 노예주들은 거의 모두가 '가정적인 남성'이었고 스스로를 사업가라 생각했다. (356쪽)


최근 인간 노예의 가격은 평균 90달러 정도다. 역사상 최저가 수준이다. 북미의 경우에는 수천 달러나 되지만, 인도 등지에서는 10달러 선이다. 영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나의 어업 노예보다 인도의 노예가 더 저렴한 것을 보면, 베일스가 말하는 대로 노예가 늘어난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과잉일 수도 있어 보인다.



세상은 공정한가


나는 어렸을 적에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마찬가지고, 아마 누구나 그렇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금은 나도 잘 안다. 그 친구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어렸을 적에 처한 상황이 비교적 괜찮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보육원 출신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리가 없다.


바로 지금도 노예 노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노예 노동은 우리 주변에도 있다. 솔로몬 노섭이 납치된 이유는 돈을 조금 더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예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일자리를 제안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쳇말로 무동력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갈 수도 있는 거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저임금으로 남들이 하기 싫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노예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학력이나 성장 배경이 조금 더 좋아서 남들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가?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은 너무 추상적이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지 여부를 알아보려면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가 받아야 할 보상이나 처벌을 저승이 아닌 이승에서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360쪽)


절묘한 질문이다. 인도에 카스트가 사실상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다음 생의 보상과 처벌' 때문이니까.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배우


모디 총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정치꾼 중 하나다 (달적달)


존재냐 행동이냐


더 직관적인 질문을 던져 보겠다. 이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이다. 노숙자는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며, 의지가 있다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주장에 대체로라도 동조한다면 당신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만났던 가장 선량한 사람들조차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나는 저 주장이 틀렸음을 안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캐나다 어느 모임에서 노숙자 전문가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저자도 성폭력 방지의 최선책은 청소년기에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말한다.


나는 강간 예방의 핵심은 성적 사회화 과정을 개선하는 것이라 믿는다. (403쪽)



노숙자들을 보고 그들의 신세가 그들의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숙자들이 자신들과 다른 종류의 존재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게으르지 않으므로, 그런 일이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게 일부 책임이 있으며, 나나 내 가족은 그들처럼 처신하지 않으니 성폭력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심리와 근본적으로 같다.


악행은 맥락에서 발생한다. 어떤 특정 부류의 존재가 악행을 저지르고, 어떤 특정 부류의 존재들만 그런 악행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믿는 편이 쉽기도 하고 안심도 될지 모르겠지만, 틀린 명제를 믿고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결정은 아니다.


악인이라는 부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악행이 발생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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