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된 친구가 어디 아픈가 보다.
커피 머신 이야기다.
200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내를 걷다가 네스프레소 부티크에 들어가 질러버렸다.
내가 시식하고 나면 그냥 가지 못하는 성격인데, 부티크에서 마신 공짜 커피가 문제였다.
아니, 문제는 아니었다.
15년 동안 정말 충실하게 내게 카페인을 공급해 주던 친구니까.
2020년 여름,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격리를 하게 되었다.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커피를 해결하기 위해 네스프레소 머신을 새로 하나 샀다.
자동으로 우유 거품까지 내주는 최신 기계.
그런데 커피 맛이 영 별로였다.
나중에 격리가 풀리고, 이사짐을 가지고 와서 원래 쓰던 녀석으로 뽑으니, 예전의 그 맛이 났다.
왜 그런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고, 결국 레버를 당기는 맛이 있는 예전 기계를 쓰게 되었다.
오늘, 따뜻한 라테를 뽑아 보니 우유가 좀 많았다.
그래서 샷 하나 추가.
그러니까, 평소에는 하나든 둘이든 샷 먼저 뽑고 우유를 데웠는데,
오늘은 샷 뽑고, 우유 데우고, 다시 샷을 하나 더 뽑았다.
그런데 초록 불이 계속 깜빡거리는 거다. (아날로그 갬성.)
심호흡을 한 번 하면서 기다렸지만 그대로였다.
아직까지 예열이 되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 그냥 레버를 당겼다.
평소와는 달리 무슨 증기 기관차 같은 소리를 내며 에스프레소 샷이 나왔다.
뭔가 수상해서 급하게 레버를 원위치.
머신을 열어보니 캡슐이 폭발해 있었다.
15년 동안 이런 장면은 처음 봤다.
후기.
좀 대대적으로 청소를 해줬더니 멀쩡해졌다.
휴,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