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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이 공하다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by 히말

불교 관련 서적은 좀 읽었지만, 경전 중 제대로 읽은 것은 금강경뿐이다. 이번에 법륜 스님이 <반야심경 강의>를 쓰셔서, 냉큼 읽었다.



제법무상


불교는 한 마디로 해서 무상을 깨닫는 것이지만, 아상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상을 잔뜩 두른 채로 불법을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유아의 경지에 머무른다. 이것을 경계하라는 것이 반야심경의 유일무이한 메시지다. 다시 말해, 제법이 공하다.


반야심경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광본으로 해도 겨우 3쪽에 지나지 않으며, 약본으로 하면 2쪽이다. 그런데 책 뒷부분에 나오는 약본을 읽어보니 어디에서 아주 많이 보던 것이었다. 나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호기심 반 경외심 반으로 법회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이걸 읽었던 기억이 난다. 더구나 반야심경의 맨 마지막 구절은 그 유명한 '아제아제 바라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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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경계


법륜 스님에 따르면, 반야심경의 핵심 경문은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 즉 현상계(색), 감각 반응(수), 정보 기억(상), 의지 작용(행), 과보(식)를 말하는 것인데, 이를 다른 관점에서 분석하면 안이비설신의, 즉 오감에 머리(의)를 더한 6개의 감각기관이 만들어내는 색성향미촉법 6개의 결과물을 포함한 12처, 또는 이 12처에 6개 차원의 과거 경험(식)까지 포함하는 18계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식에는 안이비설신과 의식 등 6식이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잠재되어 있는 두 개의 식이 더 있는데 이를 말라식(제7식), 아뢰야식(제8식)이라 한다. 잠재의식의 존재를 서양에서는 19세기에 들어서야 발견하지만, 불교철학은 이미 오래 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251-252)


데이터의 소스를 5온, 12처, 18계로 나눠볼 수 있다면, 데이터가 처리되는 방식은 12연기를 통해 볼 수 있다.


과거로서 무명과 행이 있고, 이에 따라 과거의 결과물로서의 현재인 식, 명색, 육입, 촉, 수가 발생하며, 수에 따라 즉각적으로 애(갈애)가 발생하는데, 이에 따라 미래의 원인으로서 현재에 해당하는 취, 유가 따라온다. 유에 이어 미래에 해당하는 생과 노사가 발생하며, 이는 다시 무명과 행으로 이어지며 순환한다.


KakaoTalk_20220924_151409251.jpg (c) 법륜 스님


'수'에 따라오는 '애'의 순간, 이를 '취'할 경우 어느 쪽이든 결과가 좋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취'하지 않음으로써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수'에서 '애'가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정'이며, '애'에 불구하고 '취'하지 않는 것이 '계'다.



앎의 실천


수행 차원에서 볼 때, 찰나 이전이 전생이고 찰나 이후가 내생이다. '수'는 부싯돌의 불꽃러럼 반짝 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불꽃이 솜으로 옮겨 붙은 다음에야 불이 난 줄 알지, 불꽃이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늘 몸과 마음의 감각에 깨어 있어야 한다.


업식은 무의식 차원이라 알기 어려우나, 알아차림 훈련을 통해 알 수 있다. 남이 나를 칭찬하거나 비난해도 내가 내 업식을 알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이를 배운 대로 그냥 실천하면 좋겠지만, 실천이라는 것이 워낙 쉽지 않기 때문에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을 제시한다.


육바라밀은 1) 반대 급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보시바라밀, 2) 지킨다는 생각 없이 계율을 지키는 지계바라밀, 3) 참는다는 생각 없이 인내하는 인욕바라밀, 4) 깨달음을 그대로 우직하게 실천하는 정진바라밀, 5)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선정바라밀, 그리고 6) 이 모든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반야바라밀을 포함한다.


그러나 반야심경이 반야심경인 이유는 바로 제법이 공하다는 점까지도 깨닫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강을 건넜다면 이제 배가 필요 없고, 사다리를 올라왔다면 사다리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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