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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귀환

[책을 읽고] 위화, <제7일>

by 히말

***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강물에 뭐가 떠내려가는데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아기다.

올곧은 성격의 아줌마는 시장바구니를 든 채 신문사에 갔고, 건물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출근하는 기자 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머니와 기자들은 아기 시체의 발에 묶여 있는 병원 표식을 발견하고, 그 병원에 가서 따졌다. 그랬더니,


표식이 없는 열아홉 구의 시체는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강제유산된 6개월 정도의 태아라고 했다. (181쪽)


그래서 사람이 아니고 의료 쓰레기라서 강물에 무단투기했다는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며칠 뒤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는데, 근처인 바로 이 병원의 영안실에 안치되었고,

영안실에는 아주머니가 구해낸 27명의 아기들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싱크홀이 발생하면서 영안실이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병원은 다른 시체를 화장한 유골로 유족들을 속였다.

그래서 아주머니의 가족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유골을 받아 매장했다.

이제, 아주머니의 유령은 가족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저곳은 어떤 곳인가요?" 그가 물었다.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 내가 대답했다.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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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곳에 왔다.

매장되지 못해 가족들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녀와 함께 같은 운명을 맞은 27명의 아기들이 있다.


아줌마는 앞쪽에서 점점 멀어지는 도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스물일곱 명의 아기들을 바라보고는 자신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알았다. 아줌마가 작은 소리로 아기들에게 "가자"하고 말했다. (290쪽)


***


<인생>이나 <허삼관 매혈기>가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대개 인정할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다른 소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과학소설인 <삼체> 제1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겪은 문화대혁명이다.


그런 어린 시절을 겪은 위화가 기괴한 스토리를 만드는 데 끌리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나는 <형제>(2005년)를 읽고 매우 불쾌했고, 위화를 다시는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냥 기괴한 이야기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쓴 소설이었다.

시쳇말로 하는, <급전>이 필요해서 붓 가는 대로 마구 휘갈긴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읽은 위화는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제7일>(2013년)이다.

죽음 이후라고는 하지만, 결국 살았을 때 이야기를 되짚는 것들이다.

이제 어느 정도, 중용이라든가 절제의 미덕을 체득한 작가의 원숙함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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