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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25. 2022

석유의 지정학

[책을 읽고] 대니얼 예긴, <뉴 맵>

석유가 지정학의 핵심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석유의 중요성은 현재 감소하는 중이다. 과연 석유의 지정학은 미래에도 유효할 것인가?



석유 공급 - 셰일 가스


중동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 것은 석유 때문이다. 미국이 경상수지 만년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 패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사우디와의 석유 대금 결제 협약 때문이다. 사우디가 석유에 있어 세계의 중앙은행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유휴 생산 능력 때문이다. 물론 단순 매장량도 압도적이기는 하다. (단순 매장량만 보면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대지만, 그 대부분은 처리하기 까다로운 중질유다.) 이란과 사우디는 각각 시아파와 수니파의 수장으로 대결을 벌이고 있지만, 석유 패권에서도 중요한 라이벌이다. 


푸틴의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된 것도 고유가 때문이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국방비 지출에 있어 세계 3, 4위인데, 당연히 재원은 석유 판 돈이다. 산유국이 아니었던 나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 그 나라의 경제 구조 자체가 바뀐다. (대개는 저주가 된다. 레비아탄 유전 발견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미래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아랍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양아치 취급을 받던 IS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도 그들이 석유를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셰일 가스다. 셰일 가스 개발로 미국은 사우디, 러시아와 함께 석유 공급의 빅3에서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캐나다에서) 원주민들과의 법적 분쟁이 있고, 개발-생산 주기가 짧아 가동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셰일 가스의 존재는 서구권의 에너지 안보를 극적으로 개선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가진 셰일 가스만으로도 서구권은 중동, OPEC, 또는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을 상당한 수준까지 견뎌낼 수 있다. 실제로 셰일 가스는 OPEC의 통제 밖에서 석유 공급을 늘렸고, 이에 따른 유가 하락은 베네수엘라와 러시아 등 여러 산유국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란에 대한 금수 조치로 인해 부족해진 석유를 셰일 가스가 때마침 메꾸었기 때문이다.


셰일 찌꺼기 (spent shale)


수요의 변화


공급 측면에 셰일 가스가 있다면, 수요 측면에는 환경 문제와 기술 혁신이 있다. 


먼저 환경 문제를 살펴보면, 온실 가스 문제는 개개인 차원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국가 이상의 차원에서는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다. 파리 협약에서 미국이 수용한 감축 목표는 '자율적'인 것이었다. 저자는 이것이 상원 비준을 받아야 하는 오바마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는데, 미국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트럼프는 당선과 동시에 파리 협약을 탈퇴했으며, 이런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일이다. 환경 위협 때문에 줄어드는 석유 수요는 아마도 0일 것이다.


반면, 기술 혁신은 다르다. 현재로서는 전기 자동차, 미래적 관점에서 보면 MaaS(서비스로서의 이동 수단)가 핵심이다. 휘발유 자동차는 100% 석유를 필요로 하지만, 전기 자동차는 아니다. 석유로 만드는 전기도 있지만, 다른 소스에서 만드는 전기의 비중이 더 크다. 전기 자동차가 우버, 리프트와 같은 MaaS, 그리고 향후 자율주행과 결합하면 자동차를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에 따라 석유 수요는 더욱 감소할 것이다.


(미국에서) 1983년에는 16세에서 44세 사이의 국민 중 92%가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2018년에는 80%로 떨어졌다. (805쪽)


자동차 소유가 MaaS로 바뀐다고 해서, 모든 자동차의 총 주행거리가 반드시 줄어든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접근성과 편리성 때문에 사람들은 대중교통이었다면 걸었을 거리도 MaaS로 이동하려 할 것이다.


또한 석유는 플라스틱 때문에라도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3억의 인구가 하루 1.25 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인도만 생각해봐도, 지금은 석유를 소비하지 않으나 미래에 석유를 소비할 인구는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코로나19의 도래로 일회용품 사용이 급증했고, 의료용품처럼 피치 못할 이유로 플라스틱을 써야 하는 산업도 있다.


반면, 끊임없이 개선되는 석유 자동차의 연비는 석유 수요를 감소시킨다. 결국, 모든 변수를 감안하면 석유 수요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현재 새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은 과거와 같은 에너지 안보가 아니라 기후 변화와 젊은 세대들의 성향 변화다. 중국과 인도의 경우에는 그에 더해 대기오염, 그리고 수입 석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포함된다. (929쪽)



결어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면 세계 경제가 고통받는다. 소련과 미국 사이의 냉전은 주로 정치 수준에서 벌어졌으며, 당시 소련은 세계 경제와 별 접점이 없었고, 세계 교역 규모도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작았다. 그러나 중국은 모든 면에서 소련과 다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본래부터 양국 모두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점차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될 다른 여러 나라들은 대단히 곤란한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925쪽)


그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에서 볼 때, 한국은 호주와 함께 탑2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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