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 부리고 후회하지 말자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봤다. 불친절한 사람은 대개 강약약강이라는 것, 즉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선택적으로만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손절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강약약강은 물론 역겹다. 어떤 사람을 손절해야 하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행동(불친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규정(강약약강)하고, 유형에 따라 처방(손절)을 내리는 논리(?)는 좀 의아하다.
judging people
살다 보니 예전에 철없이 행동한 것이 후회스럽게 느껴지는 때가 늘어난다. 중학생 때, 친구들 몇몇과 <이기주의 클럽>이란 걸 만든 적이 있다. 물론 반쯤 장난으로 붙인 명칭이고, 실상은 그냥 그룹 내 친목 도모가 목적이었다. 몰려다니며 떡볶이 사먹고 보드게임 하는 걸 그렇게 불렀다니, 중2병이 맞다.
그러나 그것이 왜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그때 <이기주의 클럽>을 함께했던 친구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없다. 단지 객기를 부린 것일 수 있지만, 객기는 또 왜 부렸단 말인가? 아마 마음 한구석에 후회가 있어서 기억하는 것 아닐까?
훨씬 나중에, MBA 과정에 있던 일이다. 학생들이 알아서 그룹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네덜란드 사람, 인도 사람과 한 팀을 만들었다. 팀 빌딩 (내지는 아이스 브레이킹) 차원에서 카페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학생들이 지나가며 뭐 하냐고 물었다. 그때, 네덜란드 사람이 대답했다.
"We are judging people. We are incredible jackasses, so we judge people."
그야말로 객기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은 맞지만, 과연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졸지에 남을 판단하는 부류로 묶인 것이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팀원의 말에 반박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 부류>가 되어버렸다.
남을 판단하는 대단한 능력
한 노교수의 책을 읽었다. 인생 선배님들 말씀은 참 푸근하게 다가와서 좋아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었다. 그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절대 갱생할 수 없는 종류이므로 절대 피해야 하고, 만약 지인 중에 있다면 빠르게 손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두에서 사례로 든 경우와 똑같은 주장이다.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판단하는 어떤 행동을 관찰하는 경우, 그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규정한 다음, 그 사람은 손절하겠다는 것이다. 행동 한두 가지로 과연 어떤 사람을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안네 프랑크의 <모순 덩어리>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그녀가 일기에서 쓴 맥락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는 이 표현을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몇 가지 관찰하고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친절한 사람, 성급한 사람, 늘 인상 쓰는 사람 등등.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관찰 데이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절하기도 하고 성급할 때도 있고 인상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단순하게 규정하기 쉬운 타인과 달리, 스스로에게 우리 자신은 매우 복잡한, 모순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예컨대 <늘 인상 쓰는 사람>이라 판단하는 데 드는 관찰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내가 어떤 사람을 세 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인상을 쓰고 있었다면 <늘 인상 쓰는 사람>이라 판단하는 데 충분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세 번의 만남으로 내가 그를 관찰한 시간은 그의 인생의 백만 분의 1도 안 된다.
저 노교수 역시 기껏해야 두세 번의 이기적인 행동을 관찰하고 어떤 사람을 규정할 것이다. 관찰된 행동이 정말 이기적인 행동이었는가는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100년 정도 살았다고 몇 차례의 관찰로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객기 부리면 후회한다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고 부추기면 우리는 평소에 안 하던 행동도 하게 된다. 심리 상담 좀 했다고 불친절한 사람을 한눈에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주변에서 좀 띄워주니까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떠벌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객기를 부린 것이다.
100살 됐으니 인생 조언 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위에서 띄워준다. 기분이 들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객기를 부린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튀어 보이려고 하다 보면 결국 후회할 일을 하게 된다. 먹을까 말까 고민되면 먹지 말고, 말할까 말까 고민되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