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다. 긴 테이블의 대각선 방향에 앉은 여자가 부잡스럽게 뭔가를 하는 것이 눈에 거슬려 살짝 쳐다보니 운동화를 닦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냄새 나는 뭔가라도 묻었나? 여기까지 냄새가 오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신경을 끊으려 하는데 하는 짓마다 신경에 거슬린다. 의자를 테이블에 부딪치고,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을 때 탁 소리를 낸다. 이 도시에 잔뜩 있는, 회사원 남편을 직장에 보내 놓고 카페에 와서 아침부터 탄수화물을 폭풍 흡입하는 한심한 부류가 틀림없다... 라고 생각하려는 순간, 그런 식의 단정적이고 단편적인 사고를 내가 왜 하는지 반성했다.
바쁘게 살다가 오늘 하루 휴가를 낸 것일 수도 있다. 아주 귀하게 얻은 자유 시간을 마음껏 즐기려고 카페에 오는 길에 개똥이라도 밟은 것일 수 있다. 내 인생 왜 이모양이야, 라는 생각에 짜증이 폭발하려는 마음을 다스리고, 신발에 묻은 개똥을 휴지로 열심히 닦으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옆의 의자를 밀어넣다가 테이블에 부딪치고, 신발 청소를 끝낸 다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컵을 내려 놓으며 테이블 높이를 잠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공감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소설을 읽었다. 삼류 소설이다. 다른 건 몰라도, 모든 것을 욕심내고 하나도 포기하지 말라는 신자유주의적 메시지가 결론인 소설이니 참기 어려운 부류다. 그러나, 이런 소설은 요즘 흔해 빠졌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출판사에서 퇴짜를 놓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소설을 즐겼다.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도 있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주인공이 딸인 몰리와 퀴즈 게임을 하는 장면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 소설이 내게 준 귀한 경험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이다. 나도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수많은 후회를 했다. 그 모든 후회가 내 마음에 진하게 새겨져 있다.
내가 조금만 덜 이기적이었다면 J가 떠나지 않았을까? J와 헤어지고 나서라도 내가 뭔가 깨닫고 바뀌었다면, 나는 N과 결혼해서 소설에 나오는 몰리 같은 딸을 낳고 살지는 않았을까? Y를 만나기 전에 G와 사귀기로 결정했다면, 그래서 Y가 내 인생에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를 보내면서 내가 조금만 더 그녀를 배려했더라면?
홧김에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내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내 결정에 확신을 심어준 책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확증 편황이라는 걸 알고 조금 걸러들었더라면? 두 번째 직장에서 내가 참고 인내했다면? 밴쿠버에서 그냥 계속 계약직으로 일했다면? 자살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