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닐스 비르바우머,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1)
'멍떄리기'가 좋다고 말하면 이상한 시선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멍때리기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활성화하며, 이것은 대단히 창의적이다. 그러나 과연 DMN이 활발한 것이 좋기만 할까?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이 책의 <창의성>이다. 멍때리기라는 주제는 다시 변증법의 사다리를 오르는 듯하다.
DMN의 어두운 면
DMN은 창의적이다. 꿈과 공상은 우리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전해준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DMN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자전적 기억의 형성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는 <자아라는 환상>을 만드는 것이 DMN이다.
DMN이 없었다면, 우리는 잠을 자고 깨는 과정에서 매번 죽음과 탄생을 경험할 것이며,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유난히 자주 생각에 빠지느라 하던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뚜렷하다. (185쪽)
DMN에 대응되는 체계, 즉 상행성 망상활성계(ARAS)는 우리가 무언가에 몰두하는 데 특화되어 있고, 뇌가 멀티태스킹 내지 대기모드로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챙김>이다. 즉 우리가 어떤 것을 하고 있는 그 상태를 인식하는(mindful) 것이 ARAS의 핵심이다.
이쯤 되면, DMN이 악당이고 ARAS가 선역인 듯 보인다.
DMN의 정체
DMN은 대기모드다. 완전히 꺼진 상태에서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들고, 무엇보다 느리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느린 반응은 생존에 불리하다. 그래서 우리 뇌는 완전히 꺼지는 대신 대기모드에서 기다리는 편을 택한다.
DMN은 오토파일럿이다. 대기모드의 컴퓨터가 이런저런 잡일을 처리하듯, 우리 뇌는 DMN 상태에서 '백일몽(mind wandering)'에 빠진다.
이것은 텅 빈 상태와 전혀 다르며, 오히려 각종 잡음이 가득한 상태와 유사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울증, 그리고 하려는 일과 상관없는 자극에 계속 주의를 빼앗기는 주의력결핍장애는 모두 DMN이 과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텅 빈 상태란 무엇일까?
DMN 때문에 우리는 잠 자는 동안에조차 <텅 빈 상태>로 진입하지 못한다. 컴퓨터의 전원을 결코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텅 빈 상태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시도한 <감각 박탈> 실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피터 수드펠트는 소리가 차단된 어둡고 아주 큰 탱크 속에서 피실험자들이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감각 박탈>이라는 부정적 느끼의 명칭 대신 <제한된 환경 자극요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서, 피실험자들이 감금이 아니라 휴식의 기회를 받는다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피실험자 중 소수만 잠들었고, 대부분은 줄곧 각성 상태를 느꼈으며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즐거웠다고 밝혔다. (209쪽)
거의 모든 감각이 박탈될 경우, 뇌는 감각을 대체할 무엇을 찾아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결과다. 우리 뇌는 오히려 감각 박탈을 즐긴다.
이 책의 저자는 마비독약인 쿠라레를 사용해서 비슷한 감각 박탈을 스스로 시도했고, 비슷한 느낌을 경험했다.
두려움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긴장이 이완되는 느낌이 온몸에 깊숙이 퍼졌다. (중략) 이런저런 문제라든가 걱정거리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 나부랭이는 머리에서 하나도 싹트지 않았고, 모든 것이 특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237쪽)
감금증후군 환자의 행복
<잠수종과 나비>는 감금증후군 환자의 삶을 보여준다. 의식은 깨어 있으나,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죽느니만 못한 운명이다. 그러나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통한 감금증후군 환자 연구들을 보면, 이들은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자들은 감금 상태의 단계가 심각할수록 삶의 질을 묻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421쪽)
에밀 시오랑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에 이어 엄청난 보상이 따른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불면증이 에밀 시오랑을 감금증후군에 버금가는 상태로 몰아붙였다고 생각하면 과장일까?
비판자들은 감금증후군 환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를 통한 설문조사가 아닌 방법이 등장했다. 흔해빠진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중증 감금증후군 환자들은 긍정적인 자극에는 강하게, 부정적인 자극에는 약하게 반응했다. 비판에 대응하는 실험으로 인해, 결론이 오히려 강화되었다. 감금증후군 환자들은 <생각보다>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정상인들보다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