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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5. 2022

죽음은 두렵지 않다

[책을 읽고] 닐스 비르바우머,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2)

앞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감각 박탈 실험과 감금증후군 환자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텅 빈 상태>란 좋은 것이다.

2. DMN이 활성화된 상태는 잡음이 가득한 <대기모드>이며, <텅 빈 상태>로의 진입을 방해한다.

3. DMN의 반대인 ARAS는 잡음 사이에서 집중할 대상을 찾는다. 즉, <마음 챙김> 장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DMN을 억제하고 ARAS를 활성화하여 <텅 빈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명상과 불면증


자아라는 환상, 즉 <아상>을 이겨내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불교가 명상이라는 기법을 고도로 발전시킨 이유는 바로 DMN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명상을 하려고 하면 온갖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DMN이다. 이걸 이겨내는 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명상이란, 딱 멍 때리기 좋은 조건에서 멍 때리지 않는 훈련이다.


평생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에밀 시오랑은 이렇게 증언한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들다 보면, 어느덧 불안이 멈추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이 온다. 뒤이어 고요함이 따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승리가, 앞서 겪었던 괴로움에 대한 엄청난 보상이 주어진다. (108쪽)



에밀 시오랑은 침소봉대 화법이 대가이므로, 너무 액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한 주장이다. 그래서 나는 위 발언에서 두 번째 문장은 과장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첫 번째 문장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상황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져오는 변화에 주목해보자. 실제로 그가 불면증을 통해 추구한 것은 불교가 명상과 마음챙김을 통해 추구한 것과 유사하다.


미릿속에 있는 영원히 생각하는 기계는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라고. 뇌의 활동이 멈추어야 존재는 비로소 세상을 견뎌나갈 수 있다고 했다. (134쪽)



텅 빈 상태는 삶의 처음이자 끝이다


죽음이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끝에는 텅 빈 상태가 있다. 그러나 이 상태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 감각 박탈도, 감금증후군도 행복을 앗아가지 않는다.


주류 과학계는 임사체험을 대체로 뇌의 환상이라 생각한다. 생명체는 항상성 시스템이고, 죽음이라는 파국적 사건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이 거짓으로의 도피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임사체험을 DMN조차 작동하지 않는 <텅 빈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비과학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DMN을 고려하여 뇌과학 입장에서 임사체험을 해석해보면, 임사체험은 정말로 죽음에 버금가는 체험일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보듯,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고통과 불확실성이라는 두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바닥이 없는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안심해도 좋지 않을까. 가는 길은 고통과 불확실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끝은 결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소결


앤드루 스마트의 <아무것도 안하는 기술>에서 DMN에 대해 처음 접했고, 이후 몇 년 동안 관련 서적이 무수히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이 트렌드의 주류는 DMN의 찬양이다. 이는 곧 멍때리기의 찬양이었고, 1분 1초를 다투게 하는 현대인의 삶에는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이 책 또한 DMN의 여러 측면을 다루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DMN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DMN은 창의적일 수 있지만, DMN에 치중하는 뇌는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 저자는 DMN이 심지어 지능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능이 높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백일몽 인식 수행이 지능이 높은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고 빈번하게 일어나며, 또한 백일몽의 세계에 훨씬 오래 머문다. (189쪽)


멍때리기를 찬양하는 트렌드와 맞지 않아 아쉽지만, DMN이 만드는 백일몽은 지능이 높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뒤집어 말하자면, 지능이 높지 않은 경우 마음챙김이 더 어렵다.


저자는 DMN이 뇌의 오토파일럿 장치라고 말한다. 뇌가 가장 저차원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보다 높은 차원에 ARAS가 주관하는 집중력 또는 마음챙김의 상태가 있고,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 텅 빈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 


결국 명상이란 우리 뇌가 제멋대로 방황하는 오토파일럿 상태(DMN)를 극복하기 위해, ARAS의 도움을 받아 마음챙김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텅 빈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수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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