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Nov 12. 2022

지구가 멸망해도
부자들은 죽지 않아

[책을 읽고] 존 머터, <재난 불평등>

저자는 서문에서 <파인만 경계>를 넘겠다고 말한다. <파인만 경계>는 저자가 만든 말인데, 자연과학자가 넘지 않으려는 경계를 말한다. 리처드 파인만이 신의 존재 따위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질문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말로 벗어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파인만은 폭탄을 제조하는 행위와 폭탄 투하를 결정하는 행위를 구분하기 원했다. (78쪽)


리처드 파인만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자연과학자이지만, <파인만 경계>를 넘어 사회과학적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박수.


<악기>를 연주하겠다고 하고 봉고를 두드리는 게 진정한 파인만 경계지


1. 결론


결론부터 말해보자. 재난은 선한 결과와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에 선악이 있다니, 과연 <파인만 경계>를 넘는 발언이다. 악한 결과를 최소화하고 선한 결과를 최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러려면 재난이 가져오는 선하고 악한 영향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


선한 결과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예컨대 재난으로 빌딩이 파괴되었다면, 이왕 새로 짓는 것, 이전의 단점을 개선하여 새로 지으면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결말이다.


나폴레옹 3세는 파리를 근사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철거용 대포를 동원하였다고 하는데, 재난은 대포 비용을 아껴주는 셈이다.


악한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난다. 아이티 지진은 진도 7의 상대적으로 약한 지진이었고, 태풍 카트리나는 선진국에 그 정도 피해를 줄 만한 재해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티는 가난했고, 뉴올리언즈에는 빈민들이 많았다.


진정한 트롤


2.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자산 손실이다


재난의 악한 결과는 다양하다. 일단 인명 피해와 경제 피해를 가져온다. 여기에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두 번째 포인트가 나오는데, <경제적 피해>라는 말이 오용되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내가 경제적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표시한 것은, 경제적 손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실제로는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자산 손실에 해당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106쪽)


경제적 손실이라고 하면 누구나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자산 손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 나라든 국민의 절반 정도는 자산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피케티의 말대로, 재난이나 전쟁에 따른 자산 손실은 부의 평등화를 가져온다. 재난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이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 현실에는 <자산 손실>을 <경제적 손실>이라 포장하여 전 국민의 돈을 모아 몇 사람들한테 몰아주는 현상이 크게 한 몫 한다. 


<자산 손실>을 회복하는 데 돈을 보태라고 하면, 그러지 않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경제적 손실>을 회복하는 데 협력하라고 한다면?



3. 가난하면 죽는다


재난은 자산 손실을 가져온다. 즉 물적 자본이 파괴된다. 그런데 서비스업으로 대표되는 선진국 경제는 물적 자본에 대한 의존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재난으로 인한 물적 자본 파괴는 개도국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준다.


아이티 지진은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자연재해 중 하나다. 그런데 진도는 7 정도였다. 진도 9인 지진도 그런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게 보통이다. 아이티라서 그런 피해가 발생했다. 아이티는 가난하고, 얼마 안 되는 부는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게다가,


가난한 나라에는 지진 위험을 진단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척 많다. 예를 들어 열대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체로 해마다 지진보다는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174쪽)


카트리나의 예에서도 보듯, 재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잔인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잔인하다. 소위 <재건>을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가 국제적이기 때문이다. 



4. 윈스턴 처칠


카트리나보다 사망자 수가 더 큰 허리케인을 찾으려면 미국 역사를 100년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태풍 하나에 선진국 도시가 초토화되는 일은 대체 어떻게 일어난 걸까?


당시 대통령 부시는 물론, 행정부 주요 인물들은 모두 카트리나를 외면했다. 알다시피, 태풍은 예고되는 재앙이다. 언제 어디를 지나갈지 시시각각 예보가 나오는 종류다. 


카트리나 상륙이 예고된 그날, 대통령 부시와 부통령 체니는 휴가 중이었고,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즈가 초토화되고 나서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연극 관람을 가서 관객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다음날에는 US 오픈에 참석하고 뉴욕 5번가에서 구두를 구입했다.


정말로 대통령 부시는 느닷없는 붕괴에 겁먹고 부정과 무대응으로 반응한 것일까? 윈스턴 처칠이라도 그렇게 당황했을까? (342쪽)


난 윈스턴 처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저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5. 재난으로 이득을 챙기는 자들


앞서 말한 대로, 재개발 업자들에게 재난은 일확천금의 기회다.


카트리나 이후 뉴올리언스가 좀 차분해지자, 도시가 망가진 것을 재정비의 기회로 삼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379쪽)


이때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진다. 그것도 골목 단위가 아니라 전 도시적으로. 카트리나 이전에 뉴올리언스 거주자 중 아프리카계는 10만 명이 줄었고, 백인은 1.5만 명이 줄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재난으로 인해 <창조적 파괴>가 벌어지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익을 일부가 독식한다면, 재난으로 인해 얻는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승불교 대 대승불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