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Dec 05. 2022

'해로운 짓이다'

[책을 읽고]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2)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괜찮은 거 아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가서 생닭을 산다. 그런데 닭을 요리하기에 앞서 그는 닭에 대고 성행위를 한다. 그러고 난 후 그것을 요리해서 먹는다. (42쪽)


일단, 느낌이 온다. 우웩. 


그런데 이 남자의 행동은 옳지 못한가? WEIRD, 즉 산업화되고 부자인 민주국가의 고학력 백인 (White Educated Industralized Rich Democratic)이라면 이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못한다. 느낌은 오는데, 자기 신념에 걸맞는 그럴 듯한 설명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라면 쉽게 대답할 것이다. 종교가 있다면 신을 들먹일 것이고, 없다면 뭔가 다른 것을 내세우며 그것이 더럽혀졌다고 말할 것이다.


설령 그 누구에게도 해가 가지 않는다 해도 분명 잘못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이 이들에게는 있다. 같은 지구라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도덕성은 차이가 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 것이 바른 마음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43쪽)



그런데, 사실은 해가 된다고?


도덕률의 상대성에 관한 슈웨더의 연구를 보자. 그는39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피험자의 반응을 연구했다. 어떤 이야기는 미국인에게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인도인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물론 한국인은 사실상 WEIRD에 속하므로 미국인의 생각에 찬동할 것이고, 인도인의 일부 도덕률에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미국인에게는 괜찮아 보이는데, 인도인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 여자가 남편과 오빠와 한 상에서 밥을 먹었다.
- 나와 한동네에서 사는 과부가 일주일에 두세 번 물고기를 먹는다. (78쪽)


일단, 느낌이 온다. 우웩.


자, 이제 느낌을 설명해보자. 일단 드는 생각은, 성차별이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왜 용납하지 못하는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런 행동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피해가 된다면?


대담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이 바로 그거다. 저런 행동은 인도의 사회적 규율에 반한다. 따라서 사회 질서를 해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결속력을 저해하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회에 해가 되는 행동이다.


여전히 역겹다. 그러나 내가 인도에서 태어나 평생 그 사회의 규율 속에서 살았다면 아마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머릿속을 튀어나오려는 반론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일단 넘어가자. 조너선 하이트의 주장을 배우려는 것이 당면과제니까.)


결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도덕률도 사실은 쓸모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 도덕률을 어기는 것은 그 사회에 해가 된다.


too sexy?


사족


사족에서라도 반론을 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물고기가 '뜨거운' 음식으로 분류된다. 성욕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과부가 물고기를 먹으면 성욕이 자극된다. 따라서 사회 질서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헐. 일단 물고기가 성욕을... 자극한다고 치자. 그래도 용납이 안 된다. 과부는 성욕이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이니까. 즉 저 도덕률은 한 겹도 아니고 두 겹 이상의 차별을 담은 아주 어이가 없는 도덕률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인도에서 저 도덕률은 현재 상태 그대로의 사회 질서 유지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은 사회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사회로 진화하기 위해 인도 사회는 저런 썩어빠진 도덕률을 폐기해야 한다. 어우, 분통 터져.

매거진의 이전글 바른 마음에 대한 강박은 진화의 결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