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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06. 2022

코끼리를 이길 수는 없지

[책을 읽고]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3)

이성은 감정의 시녀


난 좀 영국빠인데, 역사에 천재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도 한 몫 했을 거 같다. (셰익스피어, 뉴턴, 존 레논, 호킹, 제임스 매커보이...)



유명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성이 열정의 하인이다"라는 주장을 했는데, 그게 무려 1739년이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영조가 4살 된 사도세자를 귀여워하고 있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느낌에 따라 결정이나 행동을 하고, 나중에 구실을 만들어 붙인다는 사실은 이미 뇌실험으로 입증되어 있다. 이걸 흄은 거의 300년 전에 주장했다. 사실 내가 생각하니까 존재한다는 따위의 궤변보다는, 이런 식의 주장이야말로 가만히 조용한 데 앉아 생각해보면 내릴 수 있는 종류의 결론이다.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과 같은 부류라는 말이다. (결론. 흄 만세.)


그런데 왜 이런 구조일까? 이것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호랑이 무늬가 보이면 도망부터 가야지, 호랑이인지 아닌지 머릿속에서 토론하다 보면 이미 호랑이 뱃속일 것이다. 따라서 선생각 후행동 파는 진화적 선택 결과 (호랑이 뱃속으로) 다 사라졌고, 선행동 후생각 파가 살아남아 지금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거다.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과정은 언어를 가진 생물체, 그리고 스스로의 입장을 남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생물체에게만 일어난다. (150쪽)


즉, 선행동 후분석은 다음 번 비슷한 상황에서 더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한 기제가 아니고, 말 그대로 대변인 역할을 위한 것이다.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


감정은 정보처리 장치다. 우리가 흔히 '직관'이라 부르는 것이고, 말콤 글래드웰이 <블링크!>에서 찬양해 마지 않는 바로 그거다. (물론, 대니얼 카너먼은 반대 입장이다.)


대개의 경우, 감정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모든 경우, 감정은 효율적이다. 100% 빠르고 99% 정확한 결정을 거의 에너지 소모 없이 할 수 있다. 그러나 1%의 잘못된 결정을 우리는 두고두고 곱씹고는 한다.


위 그림에서 잘 이용되지 않는 두 개의 채널은 첫째, 추론에 의한 판단, 그리고 둘째, 개인적 심사숙고다. 추론에 의한 판단이 카너먼의 시스템 2다. 이걸 습관화한다면, 1%의 잘못된 판단을 줄일 수 있겠지만, 사는 게 필요 이상으로 힘들 수 있다.


저자의 비유를 살펴보자. 저자는 우리의 판단 시스템을 코끼리 등에 올라탄 기수라고 표현한다. 대개의 경우 코끼리는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간다. 기수가 코끼리의 움직임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대개의 경우 무시당한다. 잘못하면 기수가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코끼리가 기수의 희망을 들어주기도 한다.


코끼리가 감정이고, 기수가 추론이다. 사실에 관한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감정 싸움인 경우가 많다. 기수끼리 논리적으로 따져봤자, 코끼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코끼리도 못 움직이는데 어떻게 남의 코끼리를 움직이겠는가.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은 위 그림의 3, 4번 채널이 추가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 대변인은 우리 자신보다 남들에게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아주 가끔이지만, 우리는 남의 추론에 의해 판단을 바꾸기도 한다.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런 사회적 압력이 바로 도덕률의 기초가 된다.



도덕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갓난아기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해보면, 중력에 어긋나는 현상에 아기들은 놀란다. 즉 뉴턴 법칙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태아적 경험일까?)


그런데 사회적 도덕률에서도 아기들은 선천적 선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나쁜 행동을 한 인형보다 착한 행동을 보여준 인형을 아기들이 선호한 것이다.


이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나는 놀랍다. 도덕률이란 살아가면서 배워나가는 것이라 당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도덕에 관한 선천적 코딩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는 이유는 뭘까?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면,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더 중요했던 것은 진실과 평판 중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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