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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10. 2022

종교란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책을 읽고]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7)

종교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종교를 도구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유발 하라리와 유사한 입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순서를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초고감도 동인 감지 장치가 있다. 아무데서나 얼굴 모양을 읽어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것은 생존 기제다.



가정을 해보자. 인간에게는 사소한 것을 읽어내는 초고감도 동인 감지 장치가 있다. 대개의 경우 이것이 읽어내는 정보는 착각이다. 그러나 이 장치가 사회성과 결합하는 순간, 우리는 이런 착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뇌의 대변인은 어떻게든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하고, 이러는 과정에서 온갖 현상이 신의 뜻으로 와전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시작이다.


즉 그것은 무엇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인지 모듈의 작동 과정에서 어쩌다 생긴 예상외 부산물인 것이다. (695쪽)



종교는 이집단적이다


이렇게 생명력을 획득한 밈(meme)은 문화적 혁신으로서 기능하면서 퍼져나간다. 다시 말해, 집단의 결속을 도와주는 한, 그것은 생명력을 지닌다. 즉 종교는 어쩌다 생긴 부산물이지만,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는 기능 때문에 번성하게 된다.


씁쓸한 것은, 비합리적인 믿음일수록 오히려 집단의 합리적 운용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귀함 기반에 의지하게 되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둘 다, 실험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요약하면, 종교는 인지적 착각으로 발생하였으나, 집단의 결속력에 도움이 되어 퍼져나갔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종교적 믿음은 비합리적일수록 효과적이다.


진화론의 틀에서 볼 때, 종교적 관습은 무임승차를 방지하고 집단의 결속력을 높였지만 개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종교는 집단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즉, 종교는 이집단적이다.



도덕을 정의하다


여기에서 저자는 드디어 도덕을 정의하는데, 본말전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덕적 체계란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등이 진화한 심리 기제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744쪽)


다시 말해, 도덕적 체계란 1) 가치, 미덕 등이 2) 진화한 심리 기제와 결합하여 3) 개인의 이기심을 넘어 4)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체계다.


이것은 기능주의적 정의다. 즉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이 무엇이다, 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반대쪽에는 규범주의적 정의가 있다. 무엇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어야 한다, 라는 정의다.


무엇을 올려 놓을 수 있는 것을 테이블이라 정의하면 기능주의적 정의이고, 상판과 네 다리가 있어야 테이블이라 정의하면 규범주의적이다. 규범주의적 정의는 명료하며 유동적이지 않아 쉽지만, 도그마에 쉽게 빠진다. 예컨대 정육면체 형태의 물건은 테이블로 기능할 수 있는데도 테이블이 아니게 된다.


가격은 419.99달러다


도덕을 규범적으로 정의하려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배려하는 것이 도덕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나머지 5개 내지 6개의 도덕 가치는 설 자리가 없다. 저자는 6개의 도덕 가치를 이용해 도덕률을 설명하려는 입장이니 규범주의적으로는 도덕을 정의할 수 없다.


결국 순환고리인 셈이다.


종교에 대해 길게 논의한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종교가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사는 2천 년 동안 종교가 지배해왔다. 20세기 들어 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서사가 정치를 지배했지만, 종교나 이데올로기나 결국 공통의 믿음일 뿐이다.


자, 이제 정치 이야기로 넘어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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