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
그동안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헤밍웨이 형님.
그야말로 '보석 같은' 단편들이 모여 있다. 아껴 읽고 싶은 책.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되는 책.
<깨끗하고 밝은 곳>은 문 닫을 시간에 나가지 않는 노인을 두고 두 웨이터가 주고받는 대화다. 더 젊은 쪽은 얼른 잠을 자고 싶고, 나이가 많은 쪽은 잠을 미루고 싶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 믿는 정도의 차이일까.
<킬러들>은 다시 읽어보니 꽤나 웃긴다. 죄다 저녁 메뉴라고 대답하는 식당 주인이라니.
<두 심장을 지닌 큰 강>은 마음챙김의 정수를 보여준다. 낚시를 할 때는 낚시만, 요리를 할 때는 요리만, 모기를 잡을 때는 또 그 행동에만 집중하는 주인공 닉.
<어느 다른 나라에서>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꽤 노골적이다. 짧은 글로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헤밍웨이의 재능은 여전하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오랫동안 내게 헤밍웨이 탑픽이었다. 최근에, 김윤식 교수가 다른 소설을 리뷰하면서 이 단편의 한 구절을 언급하는 걸 봤다. 난 그런 어려운 얘기는 모르겠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한 이유는 짙게 스며 나오는 허무주의 때문일 것이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다가오는 죽음. 이것보다 더 실존을 자극하는 무엇이 있을 수 없잖은가.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산문선>
역시, 조지 오웰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양심적인 지식인 중 하나다. 보수가 아니라 진보가 진정한 애국자라는 주장이나, 인도에 대한 복합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웰은 그런 이견을 모두 포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과 원자 폭탄>은 핵무기와 냉전에 대해, <간디에 대한 단상>은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히가시노 게이고, <백조와 박쥐>
사건의 진상을 향해 다가가는 중에 사람들의 입장이 뒤집히는 전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진상이라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저자가 소년법을 상당히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방황하는 칼날> 같은 작품으로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처럼 결말 부문에 생뚱맞게 한 구절 넣는다고 사람들이 소년법에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될까? 그런데 체크해보니, <방황하는 칼날>은 2004년 작품이고, 이건 2020년 작품이다. 저자가 소년법에 대해 아직 분이 안 풀렸나 보다.
김범준, <오십에 읽는 장자>
최근에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신이 바퀴벌레 같이 느껴졌다는 저자. 장자가 나비 꿈을 꾸었듯이, 바퀴벌레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마음가짐 관련 조언과 장자 이야기가 절묘한 비율로 배합된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