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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13. 2022

위대한 양심, 조지 오웰

[책을 읽고]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산문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또한 생각을 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이 생각을 하다 보면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사람은 사회에 관해 뭔가 할 얘기가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 사람의 생각에 얼마나 깊이가 있는지가 드러난다.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희대의 마녀 사냥을 고발했다. 덕분에 프랑스는 나치의 나라가 되는 운명을 모면했다. 한 사람의 양심이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행동하는 양심의 또다른 모범사례로 나는 조지 오웰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거짓말,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23쪽)


이제는 모두가 안다. 그는 이 작업을 대단히 훌륭하게 해냈다는 것을.



핵균형과 냉전


1945년에 쓴 <당신과 원자 폭탄>은 2-3개의 초강대국(3번째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다)이 지배하는 냉전 체제를 예언한다. 사실 핵균형이라는 개념은 핵 무기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오는 귀결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웰은 좀 더 일반론 수준에서 접근한다.


유력한 무기가 비싸거나 만들기 힘든 시대는 전제 정치 시대가 되기 쉽고, 반대로 유력한 무기가 값싸고 단순하면 보통 사람에게 기회가 있다. (361쪽)


예를 들면, 민주주의와 민족 자결이 꽃핀 시절에는 머스킷과 라이플이 유력한 무기였다. 누구라도 무기를 만들어 지배층에 대항할 수 있어 독재와 제국주의가 위축된 것이다. 이후, 국가 주도의 군비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미 1939년에 대규모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국가는 다섯 곳밖에 없었고, 지금은 세 나라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아마 두 나라만 남을 것이다. (363쪽)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와 같다.


만약 원자  폭탄이 지금 예상되는 것처럼 전함만큼이나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라면, 대규모 전쟁을 끝내는 대신 <평화 아닌 평화>를 무한정 연장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366쪽)



간디


간디가 사망(1948)한 이후인 1949년에 쓴 <간디에 대한 단상>은 인물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간디는 심플한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간 우직한 사람이지만,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대단히 까다로운 인물이다. 


간디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은 카스트 제도에 대한 그의 현상유지적 태도에 대한 것이다. 불가촉천민의 처우 개선에 대해 그가 내린 처방은 불가촉천민을 <신의 아이들(하리잔)>이라 부르자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1938년, 간디는 루이스 피셔와의 대담 중에 독일계 유대인들이 집단 자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전 세계와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저항할 것이라는 논리다.


전쟁 후, 간디는 어쨌든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고, 뜻깊게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했다. (377쪽)


생각해보자. 간디는 침묵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유명인이었으며, 기자들은 그의 한마디를 꼬투리 삼아 왜곡 기사를 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간디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이슈에 목소리를 냈다. 간디의 위대함에는 그런 점도 있는 것이다.


간디의 미덕은 내가 앞에서 던진 질문들을 솔직하게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간디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가 무언가를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두려워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380쪽)


이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간디의 미덕이다.



조국 사랑


오웰은 영국을 사랑했다.


 <영국 요리를 옹호하며>에서 그는 외국인들이 영국 요리를 혐오하는 이유가 제대로된 영국 요리, 즉 가정 요리를 먹어보지 못해서라고 강변한다. <정치와 영어>에서는 영어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이건 작가니까 이해할 만하다.)


<사자와 유니콘>이라는 엄청 긴 연작 에세이에서 그는 영국 사회가 발전할 방향에 대해 길게 풀어놓는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영국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국내 정책 세 가지.
1. 토지, 탄광, 철도, 은행, 주요 산업 국유화
2. 영국 최고 면세 소득이 최저 면세 소득의 열 배를 넘지 않도록 하는 소득 제한
3. 민주적 노선을 따르는 교육 개혁 (308쪽)


오웰은 영국의 제국주의를 혐오했다. 오죽하면 힘들게 구한 경찰 직업을 때려치울 정도였다. 그는 체임벌린 내각에 치를 떨었으며, 영국 상류층의 행태를 가소롭게 생각했고, 빈부 격차를 개탄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시각에서는 언제나 조국 편을 들었다. 제국주의는 모두 끔찍하지만 영국의 제국주의가 그나마 다른 나라들의 것들보다 낫다고 말한다. 인도는 현재 상태에서 자립할 능력이 못 된다고 평가한다. (일단은 자치권과 함께 영국 지배에서 탈퇴한 옵션을 부여하자고 말한다.) 영국 언론이 썩어빠졌지만 나치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라 강조한다. (이건 다른 책에서 본 글에 나온다.)


마지막으로, 애국심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의 것이라 말했는데,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애국심은 보수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애국심은 항상 변하지만 신비롭게도 똑같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헌신이므로, 사실 보수주의와 반대다. 애국심은 미래와 과거를 잇는 다리다. (321쪽)



사족


1945년에 쓴 글에 <냉전>이란 단어가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구글 검색을 하니 트루먼 대통령의 보좌관 중 한 사람이 냉전이란 단어를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1947년이다.


조금 더 조사해보니, 냉전이란 단어 자체는 예전에도 아주 가끔 쓰였다. 예컨대 14세기에 스페인 작가 돈 후앙 마누엘이라는 사람은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긴장을 냉전이란 단어로 표현했다고 한다.


현재의 그 의미로는 앞서 말한 미국 대통령 보좌관이 처음 쓴 거라고.


그러나, <당신과 원자 폭탄>에서 오웰은 분명히 바로 그 의미, 우리가 쓰는 그 의미로 <냉전>이라는 단어를 썼고, 1945년이다.


영원한 <냉전> 상태가 되었을 때 널리 퍼질 사회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365쪽)


오웰은 그 생각을 더 발전시켰고, 그 결과는 물론 <198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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