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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31. 2022

다마지오의 별책 부록 - 죽음,
바이러스, 엔트로피

[책을 읽고] 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끼고 아는 존재> (4)

 다른 문제들


다마지오를 읽는 중, 그리고 읽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3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소유권이 없는 마음에 관한 것, 바이러스는 생명체인가, 그리고 엔트로피에 관한 것이다.



1 소유권이 없는 마음이 다다르는 곳


우리가 의식이라는 요소를 마음에서 제거해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미지들이 흐를 것이다. 다만, 그 이미지는 소유권 없는 이미지들이다. 그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은 이미지들이다. (170쪽)


이 문장은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좌뇌가 죽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이 느낌은 별다른 것이 아니고, 수많은 임사 체험자들이 증언하는 바로 그 느낌, 즉 세상 모든 존재와 연결되는 평화롭고 황홀한 느낌이다.


이는 또한 감금증후군 환자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과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감금증후군이란, 느낌을 이루는 세 가지 감각 중 하나(근골격계) 또는 둘(+외부감각)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수반되는 엔도르핀 분출과도 연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는 분명히 항상성 시스템에 대한 모니터링을 일시적이나마 중단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바이러스의 신비


바이러스는 단지 정보 묶음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유기체에 침투해서 그 유기체의 항상성을 지배한다.

바이러스에게 조종당하는 유기체는 바이러스를 번식시키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결국 죽기도 한다.

이쯤 되면, 바이러스에게도 비명시적 지능의 일부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다마지오의 주장이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내용물, 즉 핵산을 확산시킬 정도로 지능적으로 행동하지만, 살아 있지는 않은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86쪽)


다마지오는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생명체 안으로 침투했을 때조차도 살아 있지 않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영속성의 측면에서 보면 바이러스의 행동은 매우 지능적이다.

역설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설에는 매우 쉬운 해법이 존재한다.

바이러스를 생명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지만, 나는 바이러스도 생명으로 보는 시각을 지지한다.



3 엔트로피


감수자 박문호는 감수의 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생각을 제시한다.


인간의 뇌는 기억이라는 공간적 배열을 동적으로 바꾸면서 외부 환경의 변화하는 이미지를 만든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이미지 배열의 지속적인 재배열을 통해 제한된 공간에서 시간 의식이 출현한다. 기억 공간에서 가능한 배열의 수가 바로 지식이며 의식이 된다. 이미지 패턴의 배열의 숫자는 물리학에서 엔트로피가 된다. (36쪽)


시간의 화살이 가지는 방향성이란, 인간의 뇌가 심적 이미지를 배열하는 방식에 대해 가지는 불균형성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다.

재배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은 쪽이 미래다.


시간이란 개념은 인간, 적어도 지적 생명체(sentient being)에 국한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다마지오가 말하는 비명시적 지능만으로 살아가는 유기체들은 오직 현재만을 살 뿐이다.

카를로 로벨리나 줄리안 바버처럼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나에게는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에 기대어 살아간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특장점이 공통 서사를 믿는 능력이라 말했다.

그는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얘기한 것이지만, 어쩌면 시간이야말로 사피엔스의 공통 서사 중 으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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