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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31. 2018

우리는 왜 늙는가

[서평] 조너선 실버타운,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연인 티토노스가 영원히 살게 해 달라고 제우스에게 빌었다. 티토노스는 불멸의 삶을 가지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늙어갔다. 에오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티토노스는 울다 지쳐 귀뚜라미가 되었고, 죽음이 자신의 고통을 끝내주기를 바랐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불사가 아니라 영원한 젊음이다. 생물은 대체 왜 늙어가는 것일까? 조너선 실버타운은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에서 진화생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노화라는 현상을 살펴본다.

유전자의 두 가지 전략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리처드 도킨스가 설명하는 노화를 살펴보자.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손을 남기기 전에 생존 기계가 죽는 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자손을 남긴 다음이라면 생존 기계의 죽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자손 번식이 끝난 다음에 발생하는 질병이나 기형은 '적자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전자로서는 자신의 목적, 즉 자기 복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손 번식에 적합한 나이가 지난 다음에 발생하는 질병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해당 유전자를 도태시키지 않는다.

노화는 유전자가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대리인일 뿐이다.


유전자가 자기 복제본을 세상에 많이 존재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담고 있는 생존 기계가 오랫동안 살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 기계가 복제본을 많이 퍼뜨리게 하는 것이다. 지구에 생물이 발생하던 초기에는 대개의 유전자가 빠른 번식을 통한 영토확장에 힘썼다. 그러다가 생식세포와 체세포가 분업 체계를 구성하는 다세포 전략이 나타나면서 게임의 환경이 크게 바뀐다.

오랫동안 단세포 생물이 지배하던 지구에서 다세포 생물이 폭발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마도 군비 경쟁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다세포 전략으로 성공한 개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단세포 전략은 한계에 다다른다. 그리고 다세포 생물끼리는 점점 더 강하고 오래 견디는 개체를 만들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이전까지는 다다익선의 무한 자기복제 전략이 먹혔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을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어류나 거북이가 낳는 수천수만의 알 중에 성체로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튼튼한 개체를 낳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튼튼한 개체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비용이 드는 일이라고 조너선 실버타운은 지적한다. 단연코 최대의 위협은 암세포다. 암세포는 말하자면 유전자의 의지를 거역하는 반역자다. 조화를 이루어 개체의 생존과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정상 세포들과는 달리, 암세포는 자기만 생존하고 번식하려 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별다른 게 아니라 복제과정에서 나타난 돌연변이일 뿐이다. 다세포 생물에게 암세포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는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오래 살게 하는 전략이 영원히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오래 사는 개체는 언젠가 암세포에 굴복할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복제자를 많이 만드는 전략, 그리고 유전자를 운반하는 각 개체를 오래 유지하는 전략 사이에서 기댓값을 최대로 만드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개체는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효용에 비해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 이런 개체는 유전자의 버림을 받고 사멸한다. 이것이 노화의 정체다. 한계효용의 체감과 한계비용의 체증이라는 용어 대신, 저자는 유전자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모든 생물에서 수명은 생장이라는 방안, 번식이라는 방안, 보수라는 방안 사이의 융통성 있는 타협을 통해 결정되는 듯하다. (121쪽)

노화란 자연의 섭리

조너선 실버타운은 많은 동물에서 발견되는, 몸집과 수명의 정비례 관계에 의문을 던진다. 큰 몸집은 많은 세포를 포함하므로, 암세포의 발생 위험이 커진다. 그런데 오래 사는 동물 중에는 몸집이 큰 것이 많다. 큰 동물이 작은 동물에 비해 암에 대한 대비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큰 동물이 작은 동물에 비해 오래 사는 이유는 대사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저자는 소개한다. 생물은 피부 온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체온 유지에 필요한 열은 대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이다. 대사 과정은 3차원인 몸에서 일어나는데, 이 열이 2차원인 피부 표면을 데우는 데 쓰이므로, 큰 동물이 작은 동물과 마찬가지 속도로 대사를 한다면, 큰 동물은 고열로 죽을 것이다. 그래서 큰 동물일수록 대사 속도가 느리다.

느린 대사 속도가 오랜 수명에 기여하는 이유를, 활성 산소 가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사 속도가 느리면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 산소도 느리게 발생하며, 따라서 활성 산소에 의한 손상도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많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대사 속도와 수명은 별 상관관계가 없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비행 능력, 맛없음, 유독 물질 등 포식 위험을 낮추는 요인들이 수명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수명과 직접 관련 있는 변수는 세대 속도라고 한다. 세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빠른 번식을 통한 유전자 확산 전략이고, 세대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각각의 개체를 오래 생존시키려는 전략이다. 개체를 오래 생존시키는 일에는 비용이 든다. 따라서 세대 속도는 개체가 얼마나 잘 살아남을 수 있는지, 즉 환경이 성체의 생존에 얼마나 위험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즉 세대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성체가 살아가는 환경이 덜 위험하다는 의미이고, 이에 따라 더 오래 산다는 결론이다.


DNA 복제 과정에서 정보 누락을 막기 위한 것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점점 짧아지므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다.


그 결론은 텔로미어의 길이로 나타난다. 텔로미어는 DNA 복제 과정에서 정보 손실을 막기 위해 이중나선 끝에 부착하는 보호장비다. DNA는 복제 과정에서 그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가 기록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DNA 나선 끝에 부착하는 정크 데이터 같은 것이다. 텔로미어는 DNA 복제 과정에서 일부가 잘려나가므로 점점 길이가 짧아진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헤이플릭 한계에 다다르면, 즉 너무 짧아지면 더 이상의 복제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노화의 기전이다.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라는 효소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복원시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간에게는 이 효소가 없다. 이것은 신의 형벌이 아니라 암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DNA의 무한 복제는 암 발생 가능성을 극적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텔로미어가 계속 복원되면서 DNA의 무한 복제가 가능했다면 인간은 티토노스와 같이 불행한 운명을 맞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노화는 자연의 섭리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서양 문명의 발원지는 그리스다. 그런데 그리스 비극의 공통 원인은 휴브리스(hubris), 즉 운명에 거역하는 인간의 오만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감과 겸손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는 어떤가? 인간이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는 특이점 이론을 설파하는 레이 커즈와일, 인간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데이터 처리를 통해 신적인 존재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호모 데우스>의 유발 하라리. 이들이 보는 인간에게 한계는 없는 것 같다. 

노화도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과학 발전은 우리가 휴브리스조차 극복하게 만들까, 아니면 우리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이카로스처럼 추락하고 말까.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표지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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