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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06. 2023

각자도생의 나라

[책을 읽고] 린다 티라도, <핸드 투 마우스>

이 책은,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가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라는 서사가 사회적 믿음으로 정착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파견직 노동자 보호에 있어 미국과 비견될 정도로 엉망인 나라로 한국을 꼽고 있다.


눈에 띄었던 구절들을 발췌해 보겠다.


- 빈곤이 감옥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면 아예 죄수들로 저임금 일자리를 채우면 어떻겠는가.


- 한 해에 푸드스탬프로 몇천 달러를 받는 것이 기업 구제금으로 몇조 달러를 받는 것과 어째서 신기할 만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 학생들은 모금 활동을 통해서 어렸을 적부터 빈부격차를 체험한다.


- 단기소액대부업체들은 악마의 제국이 맞긴 하지만 진정한 수요가 존재하는 틈새를 현실적으로 채워준다.


- 요즘 우리는 사회적 일탈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가두기로 한 것 같다.



***


놀랍게도,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이 왜 공화당, 즉 자기들을 대놓고 적대하는 당을 찍는가 하는 고전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준다. 


John Steinbeck은 미국에 가난한 사람은 없고 일시적으로 창피한 백만장자들만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난한 미국인들은 자신이 일시적으로 가난한 것이고, 언젠가 부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부자에게 불리한 정책은 미래의 자기에게도 불리하므로 적극 반대한다는 얘기다.



월마트에서 일하고 나이는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학위도, 제대로 된 이력도 없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야망도 딱히 없다. 그저 언젠가는 뭔가를 하면서 근사한 경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단호한 확신만이 있다. (292쪽)


***


책을 읽고 나서, 저자는 이 책으로 가난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난 사파리>의 대런 맥가비가 생각나는 것도 당연한 수순.


찾아보니, 저자는 이제 저널리스트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듯하다.

그녀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시위를 취재하던 중, 경찰의 고무탄(또는 스폰지탄)에 맞아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문제는 그녀가 60만 달러에 경찰과 합의했다는 점이다. 


실명이다. 그런데 겨우 60만 달러?


더 웃기는 것은, 2014년에 나온 이 책에 대한 리뷰다. 

<토론토 스타>의 마샤 케이는 이 책이 재미있다는 평과 함께, 저자가 곧 선거판에 나타나도 놀라울 게 없다고 썼다. 

이게 과연 '호의적'인 리뷰일까.  (위키피디어는 그렇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리뷰는 이 책에서 줄기차게 비판하는 가난에 대한 무조건 반사적 멸시에 다름 아니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선거판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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