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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05. 2023

인플레이션이라는 낯선 존재

[책을 읽고] 박종훈, <자이언트 임팩트>

이 책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 등 4개의 키워드로 바라본다.



인플레이션


지난 30년 동안 저물가와 저금리가 이어졌다. 이쯤 되면 그것이 경제의 기본 상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인플레이션과 금리 수준은 지금처럼 안정적인 변수가 아니었다.


예컨대 케이스-실러 전미 주택 가격 지수는 1890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100년 동안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 76이었던 지수는 2022년 5월에 305를 찍기도 했다.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해 보이는 요인은 많이 있다.


우선, 고령화를 보자. 일본을 보면 고령화가 디플레이션과 연관 있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 반대다. 생산 인구 감소는 임금 상승을 불러오고, 생산 감소 역시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자동화나 AI에 의한 노동 대체 효과도 있겠지만, 아직 제조업 중심이다. 서비스 산업이 70~80%를 차지하는 선진국 경제에서 자동화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도 회의적으로 볼 수 있다. 메타버스나 블록체인이 대단해 보이기는 해도, 전신이나 TV, 컴퓨터에 비하면 생산성 향상 정도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 30년간 인플레이션이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다. 그런데 세계화 기간 동안 이머징 국가(중국)의 중산층과 세계 소득 상위 3%(미국 소득 상위층)가 가장 높은 소득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세계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는 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다. 이는 주로 선진국 중산층이다. 당분간, 중산층의 분노를 무시하고 세계화를 추진하는 정당은 없을 것이다.


세계화로 인한 저물가를 이끈 것은 세계의 공장, 중국이었다. 그러나 중국 역시 고령화에 접어 들었고, 저렴한 노동력의 원천이었던 농촌 인구의 도시 이동이 이제 거의 완료된 상태다. 공산당에 의한 물가 통제로 인해 보이는 인플레이션 수준은 낮으나, 이건 폭탄을 숨겨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베노믹스로 돈을 풀었던 일본도 상황이 나쁘다. 국가 부채가 천문학적 수준이라 금리 인상이라는 선택을 취하기가 너무 어렵다. 선진국 중 다가 오는 인플레이션에 가장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발 위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향후 인플레이션 시나리오로 네 가지를 제시한다. 가능성이 높은 순서다.

   

1. 잡힐 듯 안 잡히는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잡혔다고 생각하고 금리를 내리는 순간, 다시 인플레이션이 살아나는 시나리오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아서 번스 연준 의장이 이런 식으로 대처해서 인플레이션을 키웠다. 대선 때문에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1972년 닉슨 대통령 재선이 아서 번스의 완화적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다.


2. 경기 침체로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는 경우. 높은 금리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경기 침체를 겪지만,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시나리오다.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아서 번스에 이어 연준 의장이된 폴 볼커가 이 방식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3. 물가와 경기 침체를 모두 잡으려다 폭망하는 시나리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케이스다. 저자는 이런 대침체는 전쟁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고 말한다.


4. 약간의 경기 둔화와 통제 가능한 수준의 인플레이션. 꿈 같은 얘기지만, 월가에 퍼져 있는 맹신론.


그렇다면 투자 관점에서는 어떨까. 저자는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다시 증시 랠리가 시작되는 데까지 1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금 가치가 마구 추락하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현금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는 역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리


저금리는 영원할 것 같아 보였다. 인정한다. 최근에 <걸리버 여행기>를 읽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적정 이율로 4%를 제시하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금리도 낮아졌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짐에 따라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700년대에 금리 4%라니.


단지 영국만이 아니다. 로마 시대도 국가 체계가 잡히고 안정되면서 금리가 낮아졌다. 기원전 443년에는 8%였던 금리가 아우구스투스 시절에는 4%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정치 불안이 가중되던 기원후 300년에는 금리가 15%까지 올랐다고 한다.


베니스도 마찬가지다. 12세기에는 연리 20%에 달하던 금리가 15세기에는 6%까지 하락했다. 베니스가 지중해 무역 패권을 확립한 시기다.


지난 40년 간 금리가 낮았던 이유는 뭘까? 첫째 이유는 미국 패권에 의한 세계 평화다. 전쟁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이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앞서 살펴본 영국, 로마, 베니스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나는 회의적이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면 이 요인은 사라진다.


두 번째 요인은 중국이다. 중국의 50%에 육박하는 저축률로 전 세계 돈줄 역할을 한 것이다. 중국의 높은 저축률은 미약한 사회보장, 특히 의료보장 때문이라는 것이 정론이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으니 각자도생해야 하고, 그러려면 목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의 경험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저금리로 돌파하고 나니, 저금리가 킹왕짱이라는 생각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한 것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헬리콥터 머니 살포를 강력하게 주장했고,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현대화폐이론, 즉 MMT가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그 대가는 지금 톡톡히 받고 있다.


https://brunch.co.kr/@junatul/397


저성장을 제외하면, 향후에 저금리를 유발할 요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금리 상승은 투자 위축, 모험정신 실종 등의 부작용도 가져오지만, 무엇보다 약한 고리부터 무너지기 시작해서 경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헤지 펀드로 돈을 버는 레이 달리오가 '현금보다 주식이 더 쓰레기'라는 발언을 할 정도다. 위험에 대한 버퍼는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책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과 마찬가지다. 뻔한 얘기지만, 현금 보유를 포함한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는 것이다.



전쟁


러시아가 정말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났으며, 사람들의 예상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비켜갔다.


유가 급등으로 인해 빈 살만의 협상력이 폭발하고, 이란과의 대화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란과의 핵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도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미국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벌어진 전쟁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조속히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에 중국과 인도가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야 그렇다고 해도, 인도라니? 참 재미있다. 인도라는 나라는 치국도 안 되는 주제에 평천하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러시아가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미국의 패권 경쟁 상대는 당연히 중국이다. 러시아를 상대로 무한 군비 경쟁, 즉 스타워즈 계획으로 이긴 기억을 가진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도 결국 돈을 무기로 쓸 것이다.


중국에 관한 책을 보면, 중국이 가진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로서는, 부동산 버블을 그대로 터뜨릴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부동산 개발은 지방 정부 재정과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이 상황에서, 앞서 말한 인플레이션 통제가 무너질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수 있다.


언젠가 중국은 미국과 비등한 입장에서 패권 경쟁을 할 것이다. 내 생각에 그건 100년 정도 지나야 벌어질 일이지만 말이다.


패권 경쟁의 격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가 흔들리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그동안 수혜를 봤던 나라들이다. 중국, 독일, 한국 등이다. 더구나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이 문제가 너무 커지지 않기를 바래야 하는 이유다.



에너지


에너지 딜레마는 간단하다. 화석 연료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어렵다, 라는 말은 그냥 비싸다는 말이다.


유가 전망은 혼탁하다. 경기 침체는 유가를 끌어내릴 것이다. 사우디, 러시아, 이란이 석유를 무기화한다면, 유가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고유가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대체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유가를 끌어내릴 수도 있다. 사우디와 이란이 종교 차원에서 숙적이란 점도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고유가를 등에 업고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까불었듯, 고유가는 주요 산유국들에게 무기가 된다. 러시아가 전쟁을 더 오래 하고, 사우디와 이란이 인권 탄압과 독재를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요인이다.


재생 에너지는 어떨까.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대놓고 WTO 규정을 위반하는 인근궁핍화 정책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나 배터리 기술이 필요한 것은 단지 미국만이 아니고, 유럽 등 경쟁국들이 당장 궁핍해지는 것을 그냥 인내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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