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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03. 2023

한 사람의 상상력

[책을 읽고] 조지 오웰, <1984>

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1984>. 그 뒤로 다시 읽은 적이 없지만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빅 브라더. 윈스턴. 줄리아. 그리고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나쁜 넘.

윈스턴은 주인공이라 이름을 기억했겠지만 (처칠도 관련이 있을 거다)

줄리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윈스턴의 절규 한 마디가 기억에 선명히 남아서다.


"저 말고, 줄리아한테 이러세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이 책의 주제나 상징에 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으므로, 나는 이 글에서 조지 오웰의 상상력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그의 빼어난 상상력에 대해서, 그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은 다음과 같다.


- 쌍방향 텔레스크린. 특히, 아침 체조를 하면서 체조 강사가 윈스턴에게 똑바로 하라고 말하는 장면.


- 3개 초강대국 사이의 영원한 전쟁. 전쟁을 통해서 권력에 대한 도전을 사전 차단하는 시스템.


- 새로운 언어. 모든 불규칙을 없애고, 어휘의 숫자를 줄이는 효율성.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인 냥 35년 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조지 오웰에 대해서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이런 노래의 가사는 사람의 손은 전혀 거치지 않고 오로지 가사 생성기라는 기계에 의해 만들어졌다. (225쪽)


이런 기술은 1984년은 고사하고 몇 년 전까지도 없었던 기술이다.

지금은 챗GPT 덕분에 널리 알려진 기술이지만, 조지 오웰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오브라이언은... 구술 기록기를 앞으로 끌어당겨... 메시지를 내뱉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273쪽)


그러니까, 음성 인식 타이핑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존재한 지 조금 됐지만, 1984년에는 당연히 없었고, 지금도 성능이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지구 중심부에 있는 열을 자극해 지진이나 해일 같은 것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과 같은 가능성이 희박한 것들까지 연구하고 있다. (313쪽)


이 또한 대단한 통찰력이다.

어구 생성이나 음성 인식은 가능하지만, 지진이나 해일을 만드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다.


탱크, 잠수함, 어뢰, 기관총, 심지어 소총과 수류탄까지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314쪽)


핵무기의 등장으로 재래식 전투 양상이 다시 사용될 것도 예견하고 있다.

물론, <1984>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핵 전쟁이 벌어진 다음에야 사람들이 핵무기 사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기는 하다.


새로운 귀족 정치는 관료, 과학자, 기술자, 노동조합 운동가, 광고 전문가, 사회학자, 교사, 언론인, 전문 정치인들로 구성되었다. (329쪽)


이 통찰은 여러 문학 작품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조지 오웰이 훨씬 일찍 말한 듯하다.

과학자와 기술자, 즉 테크노크라트의 지배세력화는 많은 미래소설에서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주는 것 아닐까.


빅 브라더 아래에는 내부당이 있다. 내부당원의 수는 6백만 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외부당 아래에는 인구의 85%에 달하는 일반 대중이 있다. (334쪽)


구 소련과 중국의 사회 계층 구성을 정확히 보여준다.

오웰이 <1984>의 원고를 끝낸 시점이 1949년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을 파악했을까? (물론 소련에 대한 지식을 어떤 경로로 얻었을 수는 있다.)


과두 정치의 본질은 부자 세습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 의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부과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이다. 지배 계급은 그 후계자들을 지목하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육이 아닌 당 자체를 영속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336쪽)


구 소련과 중국에 대해 거의 확실히 정확한 서술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절반 정도 맞는 이야기다.

빅브라더 자체가 그런 지배의 상징과 같은 것이지만, 부자 세습을 이어가는 북한의 경우에도 핵심은 주체 사상 아니던가.


이 외에도 오웰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양산되는 과학 소설이 보여주는 빈약한 상상력을 생각하면, 조지 오웰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비상한 천재였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훌륭한 인품과 실천적 양심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 글에 달린 모든 그림은 AI가 생성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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