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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21. 2023

야, 거기 너! 아프리카 출신!

[책을 읽고] 니컬러스 머니, <이기적 유인원> (1)

이 책은 지구 생물권을 완전히 파괴하여 자신조차 멸종의 길로 몰아넣은 아프리카 출신 유인원의 한 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시작은 꽤 곤란하다. 이거 과학자가 쓴 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꽤 과격한 농담으로 시작한다. 다름 아닌 <인류 원리>를 비꼬는 내용이다. 비꼼과 몰이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이 있든 없든 지구는 극축을 중심으로 시속 1,600킬로미터로 회전하고... (중략) 진정 인간을 위한 우주라면 지금보다 우주 방사선은 약했을 것이고, 우주에서의 식사는 훌륭했을 것이다. (20-22쪽)


책 후반부에 이르러, 저자는 균류 과학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얼마 전에 관련된 책을 읽은 덕분에, 균류 과학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뭐, 과학자라면 일단 나쁘게 생각할 여지는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하다가도, 이 책 저자조차 신명나게 까는 왓슨 같은 인격의 인물도 있다. (저자는 라이너스 폴링을 더 신랄하게 까고 있기는 하다.) 대개 흠이 많은 사람들이 남의 흠도 잘 보는 편이다. (헉, 나도 말 조심해야겠다.) 다사카 히로시는 <인간력>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흠을 가진 타인에게 특히 혐오감을 보인다고 말한다.



각설하고, 이 책은 다양한 과학 분야에 대해 아주 짧고 굵게 리뷰를 해볼 수 있는 책이다. 아주 재미있다. 저자의 전공분야가 균류인 만큼, 생물학에 대한 내용이 제일 좋고,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그냥 지성인 수준이다. 특히 지구온난화를 다룬 9장과 우리의 멸종을 다룬 10장이 그렇다. 그냥 에세이다.


그러나 그 에세이 파트야말로 제일 가슴에 쓰리게 다가온다. 


텍사스에 사는 나의 형은 이런 상황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중세 온난기 기록을 참고하고,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 평균 기온 사이의 놀라운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기후변화 반대론자의 글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177쪽)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대부분은 지구온난화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 망각할 뿐이다.


지금 모든 탄소 배출을 중단한다 해도 지구는 계속 더워진다는 사실을 아는 온라인 논평가들 사이에는 마음껏 즐기다가 인류가 모두 죽고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지구를 재가동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204쪽)


그건 당연하다. 지구온난화로 인류는 멸종하겠지만, 지구는 살아남는다. 생명체들도 살아남는다. 박테리아는 물론이고, 바퀴벌레와 같은 대단히 복잡한 다세포 생물도 많이 살아남을 것이다. 리셋된 그 지구에 인류와 같은 자기도취적인 생물이 다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그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 책 저자조차도 언급하지 않는, 더 솔직한 이야기는 이거다. 우리는 인류 멸종으로 우리가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 인류 멸종이 우리 세대에 일어날 일이었다면 이렇게 평온할 리가 없다. 적어도 <Don't Look Up> 수준의 난리는 날 것이다. 물론 텍사스에 사는 저자의 형은 정부를 지지하고 하늘을 쳐다 보지 않겠지만.



나는 <실낙원>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너무 재미없었으니까. 이 책에 인용된 <실낙원>의 엔딩에서, 이브는 아담에게 자살을 제안한다. 그들이 자살하면 신이 내린 형벌은 무효화된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자살하지 않았다. 저자가 <우아함>이라 명명한 특성은 애초에 호모 나르키소스에게 없었던 것이다.


나도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 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확실해져 가는 인류 멸종을 다급한 어떤 일로 받아들이기에 내 상상력은 너무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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